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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강좌

[현장스케치] 6주차, 기독교 세계관으로 본 우정과 연애 (서희선님 글)



6주차에는 고려대 SFC 장철순 간사님의 '우정과 연애' 강의가 진행되었습니다.

 

- 지금 연애를 하고 있다면, 어떻게 시작하였는가?

지금 연애를 하고 있는 분께서 친절히 대답해주셨습니다.

 

- 주변에 본받을 만한 연애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주변에 본 받을 만한 연애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지에 대해 유재홍 형제가 있다고 손 들었습니다.  

드라마, 영화, 책으로 영향을 많이 받지만 보통 주변에서 '저런 연애하고 싶다'의 본받을 만한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 진로, 결혼 등 삶의 문턱에서 여지없이 무너지는 허약한 세계관적 기반

청년들 대부분이 겪는 일 이고 앞으로 겪을 일이게지만 연애는 중요한 결혼 이라는 과업과 직결되기 때문인지 꾀 중요하게 여깁니다.

부모님 등살에 떠밀려 속수무책으로 결혼하기도 합니다.

 

- 통불즉통, 불통즉동

건강하다! 통한다는 것(몸이 건강할 때 몸 안에서 서로 잘 통하는것)

사람 사이에도 서로 통함이 있다. 함께하고 싶은 열망, 통함이 된다. 이 열망 자체가 삶의 생성이며 혼자 보다는 삶의 생성, 생명이 커진다. 우정과 연애는 통함의 관계 이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동역자다.

 

우정과 연애!

(연애가 우정이랑 뭔 상관? 응?) 이라고 생각했던 저에게 흥미진진한 시간 이었습니다.



(사진은 연애 하고 있는 사람 손 들어 보세요? 인가봅니다. ^^)

 

- 기독교 안에서 우정을 강조하는가?

 

- 연애가 특별한 감정으로 공인된 건 근대이후다.

연애는 일본에서 넘어온 단어입니다. 연애는 LOVE를 사랑으로 번역 하지 않고 연애로 번역 된 것입니다.

연애란 당연히 '남녀간의 것'으로만 인식하게 만드는 단어이지요.

연애는 다른 관계를 다 변방으로 밀어내버립니다.

 

- 우정과 연애

 우리는 연애를 생각하다가 우정을 너무 쉽게 간과 해버립니다.

 본인이 우정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더 나아가 우정관계를 잘 맺고 있다고 생각하지요(연애관계는 없으면 표가 나지만)

 이 강의가 우정관계를 잘 하는데 도움 되는 우정 계발은 안 되지만 계기가 될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우정관계를 잘 맺는 사람이 연애관계도 잘 맺을까?

우정관계를 잘 맺지 못 하면서 연애를 잘 하기 바라고 기도하는 것은 잘못 된 것 이라고 합니다.

(남자친구 생겼다고 우정 관계를 소홀히 하고 잠수 타버리는 친구들이 우수수 떠올랐습니다. ㅎㅎ)

 우정관계를 잘 맺지 못 하면서 연애하면 자기 자신을 발견할 것이고 우정관계를 못 하면서 연애를 잘하려는 것은 지나친 망상일 수

있다고 합니다.  

스승처럼 배울게 많은 친구(나는 누군가에게 스승같은 사람인가? 를 자문해 보았습니다.....마음이 무거워집니다;; ㅜ)

를 얘기하셨습니다.

 

친구면서 뜨거울 열정을 느끼지 못 하면 친구라 할 수 없고

연인이면서 우정을 나누지 못 하면 연인이라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제 노트에 왕별 표시 쾅쾅 되있습니다. 저는 바쁘다는 핑계로 뜨거운

열정을 나누는 친구와 멀어지고 일에만 뜨거운 열정을 태우고 있습니다. ㅜㅜ)

 

원숙한 연인은 서로를 친구같다 여기며

사랑의 상처, 멍든 사람은 친구같은 연인이 필요하다 생각한다고 합니다.

 

우정과 연애는 참으로 가까운거 같습니다. (제목이 왜 우정과연애 인지 확확 깨달아졌습니다!) 

이렇게 철순간사님은 우정을 기반으로한 연애를 강조하고자 하셨습니다.

 

-우정을 소중히 여긴 성경의 대표적 사례

다윗과 요나단

사무엘상 18장은 우정의 두 사람의 우정이 시작 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한다고 합니다(삼상 18:3)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몸된 지체같은 사람을 붙여주십니다.

 

여러분 앞으로의 삶 가운데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사건(=즉 넘을 수 없는 벽, 힘든 상황을 통과하는 것)을 통해 소중한 우정관계가

형성 되어야 합니다.

대학생에게 골리앗은 졸업 이겠지요, 취업이라는 난제 앞에 우리는 각각 암묵적인 경쟁 구도가 되지요.

겉으로 "너 어느 대기업 취업 되었다면서? 축하해~^^"  이러면서

속으로는 '어이없네, 학점도 나보다 낮은 것이...'

솔직히 이런게 과연 우정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런 우정이 있다면 끝내야 하나 생각이 들어 질문까지 했습니다. 서로 나눔을 통해 깊은 관계로 재편될 수 있다고 합니다.

앞서 말했듯 서로 잘 통하는 우정관계가 아니라면 그냥 대인관계로 이름을 바꿔야겠습니다! ^^^^

 

끝까지 책임지는 우정의 관계.

우정이 끝까지 가느냐 안가느냐는 '위기'의 상황에도 책임 지느냐 안 지느냐에 달렸습니다.

 

-좋은 친구란?

'셈'을 떠난 관계 입니다. 은사, 물질, 맛있는 음식 등을 '기꺼이'(목적없이) 공유하는 만남 입니다.

 

시공간을 탈출하여 중요한 역사, 특히 교회사를 보면 중요한 사건의 시작은 몇명의 우정관계가 기도하다가 되었다고 합니다.

(기독청년아카데미도 우정관계로부터 시작되서 이렇게 멋지게 성장한거죠?^^ )

우정은 수직적 위계를 탈피하여 수평적 연대를 말하는 것, 교회공동체 역시 그런 것 입니다.(왕별 표시 따악!)

 

우정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연애하고 결혼한다는 것: 창1:20 '돕는 베필'

하나님의 창조물에 대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십니다.

그러다가 뒤에 '사람이 홀로 있는게 좋지 않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돕는 베필'이 나옵니다.

 

돕는 베필은 영어로 헬퍼 같지만 더 근접한건 파트너 입니다.

헬퍼는 갑, 을이 정해진 것 이기 때문 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중요한건 말씀!

그리고 그 말씀을 들려주는 다른 그리스도인과 함께 함이 필요합니다.

잘못된 판단을 지지해주는 관계는 진정한 우정관계가 아니라고 합니다.

 

잘못된 판단을 지지해주는 성경의 이야기 입니다.

돕는베필이란 반대함을 돕는다. 의 의미가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가를 따먹은 것은 불순종 입니다.

처음 "먹고싶다~" 라고 했던 사람은 하와 입니다. '돕는베필' 이라면 아담이 '땍! 안되' 라고 해야 합니다.

선악과를 따먹는 것을 막는 것이 돕는 베필의 역할 되겠습니다.

돕는베필의 역할을 안 해 버리면 서로간의 관계도 균열이 갑니다. 

 

인간은 스스로 실존적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말씀 가운데 살지만 자꾸 기억하게 하는 다른 지체가 필요합니다. 아담과 하와 관계에서

"선악과 먹지 말라고 했어, 먹으면 안 되 알았지?" 라고 말해주는 돕는베필의 역할을 하지 않은 것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청년부에서 왕언니, 왕오빠, 왕누나 로 존재한다해도(현재 아니라 미래에도) 불안하거나 초조해할 필요없을거 같아요^^

대학부, 청년부, 선교단체에서 깊은 우정관계를 위해 노력해요! 우정관계를 잘 하고 있으면 연애도 잘 한다니 참 기쁜 소식 이에요ㅎㅎ

 

철순 간사님은 우정의 기반을 닦아야 하며 그게 중요함을 누차 강조 하십니다.

중요한 상황에 마음 훅 털어놓을 사람

불편한 얘기지만 진실을 얘기해주는 사람

이 있다면 놓치면 안 된다고 합니다.

(저의 이기적인 기질을 깨닫게 해준 친구에게 새삼 고맙다고 하트 뿅 날리고 싶습니다ㅜㅜ♥

저도 친구를 위해서 불편한진실을 말하고자 노력해야겠습니다. 아니죠, 그럼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이...사랑으로 지켜보면 불편한진실이 눈에 확 띄겠죠?)

결욱 인생가운데 우정, 연애가 하나되는 기술을 체득해야 합니다.

 

좋은 사람은 좋은 때에 만나야 합니다.

좋은 사람은 알 것도 같다만 좋은 때는 과연 언제 인지?

자기의 영적, 육적, 관계적, 신앙적 모습이 좋은 때 입니다. 그 때 사겨야 합니다.

그게 또 언제?

본인은 몰라도 옆의 사람은 압니다.

때가 무르익으면 지켜보던 사람이 '저 애 좋은 사람 소개시켜 주고 싶네' 라는 마음이 들겁니다.

연애에 있어 집착은 안 됩니다(그러고보니 친구사이에 집착은 안 해도 이성친구간에 집착은 참 많이 하는거 같네요, 아 그래서 우정을 기반으로한 연애가 중요함을 또 깨닫네요!!)

지난번 치유와회복과 연관하여 약한 부분이 깨지면서 성장합니다.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는 성숙함.

어쩌면 그 때가 '사귐의 때' 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알고이는 시간의 개념. 1분이 60초이며 1시간이 60분 이라는 것은 실험실에서 만든 겁니다.

시계 움직이는 시간에 의해 조급해지며 하나님의 때가 언제인지 와닿지 않게 됩니다.

 

또 한번 우정이 강조 됩니다.

이런 '좋은 때' 인지 아닌지를 분졀해주는 좋은 벗, 스승이 필요합니다.

겉사귐과 거짓사귐이 나옵니다.

겉사귐이 안 되려면 모든 일상 속에 사귐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열려있고 개입이 있어야 됩니다.

생활공동체를 하게 되면 일상이 다 드러납니다.

겉사귐이 아니라 속사귐을 해야합니다. 그래서 전 일상을 일관성 있게! 그리고 그 일상을 지켜봐 줄(떄론 불편한 진실도 말하면서)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겉사귐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어떤 사건을 통해서 확인 됩니다.

(착한 척 꾹꾹 눌러담은 쌓인 감정이 화산처럼 폭발하는 사건이 시발점이 되어 깊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지요. 이거 경험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익사이팅하고 재밌어요! ^^^^)

 

잘못된 연애를 시작했다면, 아직 때가 아닌데 연애했다면 헤어짐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비밀연애를 하다가 관계가 깊어지기 전에 본인이 아직 때가 아님을 깨달았다면 큰 은혜겠네요!) 

- 헤어짐은 관계 단절이 아니라 다른 관계를 향해 가는 것 입니다.

결혼하면 인생이 바뀝니다. (아참!! 빼먹은게 있어서 수정 :) 장철순간사님은 미혼이십니다 ^^^^)

나라는 인간의 기질은 잘 안 바뀌는데 다른 사람을 통해 바뀝니다.

공부, 활동하는 관계가 중요합니다. 공유되는 부분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기독청년아카데미는 매우 중요합니다. ^^) 

 

우정이든 연애는, 뭔가 줄 수 있는 인생, 사람이 되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좋겠습니다.       

 

짝짝짝! 긴장하는 모습이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차분히 열정적인 강의 해주신 철순간사님께 감사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