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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강좌

[현장스케치] 바울서신연구 현장 스케치 #2 _ 2011년 10월10일 (이현우님 글)


난 9월 26일 부터 말씀과함께 강좌와 바울서신연구 강좌 수강생들이 함께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박현지 간사는 서로가 친구되어 주기를 하자며 앞자리 부터 채워 앉고, 혼자 앉은 친구 옆에 앉아 달라고 요청 하는데요, 많은 수강생으로 만원이 된 강의실을 입증하듯 시끌 벅적한 가운데 양진일 목사님의 등장과 함께 조금씩 조용함(차분함)을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이번 강의는 고린도전서의 말씀을 공부하는 자리인 만큼, 목사님은 강의를 시작하기 전의 짧은 시간동안 고린도 전서 10:23~11:1절 말씀을 묵상하고 있으라 하시며 묵상을 하지 못한 자들에 대한 배려와 강의실 분위기를 조용히 만들며 집중하게 하기 위한 목사님의 노련하신 노하우를 살짝 엿보게 합니다.

 

강의는 고린도전서에 대한 핵심이야기를 시작으로 강의는 시작되었습니다.고린도교회의 여러 모습이 하나님이 그들을 교회로 불렀을때 기대하신 교회의 모습과 다르다라는것이 고린도전서의 핵심입니다. 사도 바울은 서신을 통해 고린도교회의 당파분쟁, 음란, 세상 법정등의 문제를 보며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하지 못함과 세속의 가치 가운데 있기 때문이라고(세상의 가치 가운데 지배 받기 때문) 진단을 합니다.

 

목사님은 바울이 제시한 핵심적인 답안을 쉽게 풀어 주시며 '예수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너희는 나를 본받아라.'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것이 아닌 타인의 유익(살리는 길)을 구하는것, 그런삶이 예수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고 바울은 그렇게 살고 있는 자신을 따라올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강의에 대해 정리를 해본것으로 목사님의 강의 내용을 담아 보았습니다.

 

[1:1] 예수의 사도로 자신을 소개하는 바울에 대하여 보냄받은자, 보낸자와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는 설명과 함께 예수에 의해 보냄 받은자는 예수를 대리하라고, 예수를 증거하라고 보냄 받는 것이며 자기의 도가 아닌 예수님(파송자) 중심적 생각을 갖는것이 예수의 사도의 의미라 이야기 하십니다.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 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자들에게 "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 입니다. 교회의 정의는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의 모임이며,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 지고라 할때 거룩하다, 의롭다의 뜻은 너와 내가 약속한것을 서로가 신실하게 지킨다, 준행한다의 의미입니다.
 

교회의 중심은 예수가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8:20 에서는 교회를 이루는 최소의 조건을 말하며 에베소서 1:23에서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임을 말씀으로 전합니다. 2011년 대한민국 사회에 예수님이 계시다면 예수님께서 행하실 일을 교회가 행하여야 한다는 뜻이며 교회에 의임된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지를 보입니다. 교회가 참교회가 될때 주위의 이웃들은 서로 교회를 공공의 선으로 인지하며 자기 동네에 들여놓고 싶어 하게 될것이고 성화되며 거듭남을 통해 교회는 가족과 이웃 주민에 유익함을 주게 되는것입니다.

 

진짜 크리스챤이 출현하게 되면 주위의 사람들에게까지 기쁨이 전해지는 그런 공공의 선. 탐욕과 세속의 가치가 아닌 절제와 감사 그리고 거룩한 신앙을 좇는 그런 삶으로의 한사람의 변화가 모든이들의 기쁨이 될수 있습니다. 세상은 이런 교회가 많아지기를 바라게 되고, 자신들의 주위에 교회가 있게 되기를 원하게 되는것 그것이 참교회 입니다. 오늘날의 교회에서 이런 교회를 찾아 보기 힘든것은 비극인것입니다.

 

교회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를 살아 내라는 것이고 오늘날을 살아가는 크리스챤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이 교회로 부르신 목적이 무엇일까"를 끊임 없이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그 목적이 망각되기 때문에 각자의 길로 걷게 되는 것입니다. 목적을 기억하고 찾아 내야만 합니다. 1주일에 한번 예배 드린다고 교회로 부르신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상조회 같이 그럴때만 모임을 갖는것도 목적이 될수 없습니다. 이런것을 훨씬 뛰어 넘는것, 교회로 불러주신 목적이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내는것이며 스스로 살아내고 세상 사람들에 증거가 되는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인되고,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 지며 그런 사회가 구현되는 나라 입니다. 대한민국이 돈, 경쟁, 탐욕이 주인이 되는 세속의 가치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주인 노릇하는 곳이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순종을 통해 구현되어 지기를 소망하는 자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세속의 가치와 맞설수 있는 대안적인 새로운 삶을 살아 내도록 부름 받은곳이 교회입니다.

 

우리의 삶의 무게 중심이 세상에 있기때문에 참교회를 이루기 어렵습니다. 세속의 가치 가운데 교회에 들어가도 말과 행동이 세속적인 사고가 들어나게 되는것으로 결국, 교회도 세상의 가치가 주인 노릇하게 되어 버립니다.

 


창세기 18장 19절 
내가 아브라함을 선택한 것은, 그가 자식들과 자손을 잘 가르쳐서, 나에게 순종하게 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도록 가르치라는 뜻에서 한 것이다. 그의 자손이 아브라함에게 배운 대로 하면, 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 다 이루어 주겠다.

 

이사야 5장 7절 
이스라엘은 만군의 주님의 포도원이고, 유다 백성은 주님께서 심으신 포도나무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선한 일 하기를 기대하셨는데, 보이는 것은 살육뿐이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옳은 일 하기를 기대하셨는데, 들리는 것은 그들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울부짖음뿐이다.

 

사무엘하 8장 15절 
다윗이 왕이 되어서 이렇게 온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에, 그는 언제나 자기의 백성 모두를 공평하고 의로운 법으로 다스렸다.

 

구약의 핵심을 말해주는 구절로서 이 말씀의 공통점은 구원하신 목적이 공평과 정의에 있다는 것입니다. 소돔성이 멸망되는 계획 가운데 아브라함을 통해 꿈꾸게 하신 새로운 나라,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 출애굽의 목적, 가나안을 향한 목적이 공평과 정의에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이 현실이 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것이며 출애굽에는 단계가 있으며 1단계인 애굽을 벗어나는것과 2단계인 가나안을 점령하는것 그리고 3단계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것입니다. 출애굽 1단계에서 몸은 탈출 했지만 정신, 사고방식, 생활습관이 탈출하지 못해 1단계에서 부터 실패한것임을 볼수 있습니다. 2단계인 가나안점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땅신학을 알아야 하는데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로서 공평과 정의로운 사회건설에 실패한 가나안의 7부족을 대신하여 새로운 임차인인 이스라엘이 부름받은것으로 이해할수 있습니다. 애굽은 하나님의 통치에 반역하는 곳으로 시대에 따라 늘 다른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그리스도의 한몸된 교회로 부르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질문해봐야 합니다.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것은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내는 부름받은 삶을 살아 내는것,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것을 증거하는데에 있습니다. 교회의 역할은 죽음으로 질주하는 자들에게 참생명의 길을 증거하고 보여주는것으로 오늘날의 판단 기준인 물량중심(재정, 사람), 자본주의적 인식에 의해 교회가 변질되어 가지만 교회를 고민하는 자들이 많아지는것이 새로운 희망이 됩니다. 참교회에 대한 갈망, 새로운 삶이 있는 교회에 대한 갈망이 오늘날 교회에 대한 희망입니다.


강의 중간 중간 한국교회의 문제점이나 역사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주시는데요 셀, 쓰웰~이 구역모임과 같지만 한국교회가 먼저 수출한 시스템(?)을 외국에 나가 다시 셀모임이라고 동일한 시스템을 도입해오는 아이러니에 대한 설명에 강의실은 빵빵 터졌습니다. 쎌?, 셀?, 쓰웰?~^^ 교회의 집사님을 모사하시며 교육, 투기 등에 대해 말투를 따라하시는 장면 장면은 쓰웰과 함께 대단한 명장면이기도 합니다.

 

싱가포르의 FCBC 셀교회를 이야기 하시며 시스템적인것이 아닌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하여서도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FCBC 교회에서  None Chistian들이 올수 있게 하기 위해 찬송과 성경 없는 노방전도와 지점별 침묵기도를 이야기 해주시면서 오늘날 교회의 실적주의로 몇명 데려왔느냐의 문제 보다 실족시키지 말아야할 교회의 모습을 또한 설명해 주셨습니다.

 

침묵기도의 목표는 티저광고와 같은 호기숨 유발로 주위의 이웃들이 뭐하는거냐고 물었을때 이 지역과 주민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라고 이야기 해주는 전도 방식입니다. 예수천국 불신 지옥의 실족적인 이야기 보다는 동네 주민들이 교회의 기도에 감사하거나 함께 기쁨을 누릴수 있는 좋은 모습으로 잠시 설명을 해주십니다.


소그룹 모임은 8:30~9:10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근거는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각 조별로 귀한 모임을 진행하였고 소모임 이후에 강의 2부가 진행되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자 되심과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되심 그리고 구원자, 주인 되심을 믿는 자들이 복음이라 합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삶으로 우리의 삶이 재편되는것, 예수님께 위임하고 양도하는 삶이 신앙이고 복임이라 합니다. 하지만 고린도 전서에서는 구원자되신 예수님의 삶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미련한것으로 받아 들여 진다는것을 말씀합니다. 초라함, 죽임당함의 길은 인간의 합리성에 비춰볼때 미련해 보이는것이지만 이 길이야 말로 우리가 갈길이라고 고백하는 자가 신앙인임을 말씀하십니다.

 

부활 사건 역시 인간에게는 미련하다 판단받은 예수님 같은 삶이 하나님께는 영원히 살아져야 한다 판단되는 사건임을 말씀해 주십니다. 인간이 환호하고 본받고 싶어하는 삶이 아닌 삶을 구원의 길로 만들어주신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게 됩니다.

 



양진일 목사님은 가장 좋은 전도에 대하여 이야기 하시며 교회가 교회되는것을 이야기 하십니다. 전도는 말이 아닌 순종을 통해서 하는것으로 실질적인 전도에 예수님을 믿으면 핍박 받고 고난 받을수 있다라는것을 전했을때 믿어지는 복음이 한국교회에서는 다른 마케팅으로 전도하고 있는게 아닐지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십니다. 또한 한국 교회의 성령론은 무교적으로 혼을 불러내는 의식과 같이 뜨거운 기도와 찬송이 있어야 멀리 계신 성령이 오실수 있다는 기대를 갖는 오류를 설명하십니다. 한두명의 조용한 기도와 찬송보다 수천, 수만명이 한목소리로 드리는 찬양이 은혜롭고 구원으로 느껴지는 유사 구원론에 대해 이야기 하시며 대형교회안에서의 좋은 예배를 드린 느낌이 드는것을 경계하셨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고백한 크리스챤들에게 성령은 이미 좌정하고 계시며 요한복음 14:26, 에스겔 36:26,27 , 로마서 8:4절 말씀을 통해 성령의 목적을 설명해 주십니다.


바울이 볼때에 고린도 교회는 육의 지배, 세속의 가치의 종노릇하는것으로 보았으며 이것은 우리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어린아이가 필요한것, 원하는것이 부모로 부터 충족되어지듯 고린도 교회를 어린아이로 표현하며 성장해서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지상 대리자로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야 함을 설명해 주십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에서는 예수님이 목적이 아닌 도구와 수단으로 될수도 있으며 나의 구원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거나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죽으실것을 이야기 하지만 제자들 자신들의 얻을 자리에 더욱 관심 가졌던 제자들과 같은 모습이 예수님을 수단으로서 생각하는 현상임을 볼수 있게 됩니다.

 

이와 함께 요한복음 3:30절의 말씀에서 세례 요한이 말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의 말씀을 통해 세례요한의 대단함을 말씀하십니다. 교회의 역사상 교회가 낮출때 하나님은 영광 받으실수 있었고 교회가 커질때 하나님은 비난받으셨습니다. 크고 거대함이 아닌 거룩함으로 이땅의 신앙인들도 비우고 부인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마지막으로 4장~7장(결혼) 까지 주요 구절에 대하여 설명을 하시며 능력=순종, 공동체의 순결, 개인의 유익이 아닌 타인의 유익을 생각하는 교회의 모습과 진리는 새로운 상황에 새로운 해석과 실천이 동반됨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7장에서의 결혼을 굳이 하지 않는것도 좋다라고 말한 사도 바울의 말에 고린도전서는 상황서신이기 때문에 임박한 종말을 전제함을 이해하여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강의 막바지에 성경의 한글자 한글자마다 영감 받아 쓰여진게 아니라 그 목적이 영감 받은 것임을 말씀하시며 '고린도전서 뒷부분에 중요한게 많은데...' 라며 고린도 전서 강의는 시간이 다하여 끝!을 맺었습니다.

 

강의가 끝이 날때마다 박수를 치시는 한 집사님의 모습을 잠시 말씀을 드리며 강의를 통해 수강생들의 가슴이 얼마나 뜨거워 지는지를 설명드리고 싶어 집니다. 항상 아멘으로 응답해주시는 집사님은 열심히 박수를 치시며 뜨거운 감정을 들어내 주셨습니다. '박수 치면 안되는거에요? " 라는 질문과 함께, 속으로 매번 박수를 치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