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D
네- 샬롬! 제가 너무너무 좋아라하는 인사입니다.
10월 17일도 우리 모두는 참된 샬롬을 우리 삶 가운데 이루기 위해서 함께 모여 말씀을 배우고, 나누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 자매님께서 고린도전서 13장을 배우길 목사님께 요청하셔서 이전 시간에 이어 고린도전서 9장부터 배우게 되었습니다.
[고전 9장]
9장의 주요 내용은 사도의 여러가지 권리 중, 바울이 지금 고린도 교회에서 누리고 있지 않는 재정 지원에 대한 것입니다.
* 여기서 잠깐!
보통 많은 사람들이 바울은 자비량 선교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 곳에서도 지원 받지 않는..)
그런데 실은 바울은 각 초대교회에 대한 상황과 수준에 따라 지원을 받기도 하고 받지 않기도 했다고 합니다.
- 9:12 ... 그러나 우리가 이 권을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라
└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는 지원을 받지 않았는데, 이유는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혹시라도 교인 중에
바울이 지원을 받기 위해 복음을 전한다고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복음이 오해되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 9:16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 대부분의 한국 크리스챤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천국 보내주려고 복음을 듣게 했다고 (구원의 이유) 생각합니다.
바울의 경우, 극적인 회심 이후 '하나님께서 왜 이런 나를 선택했는가?'에 대해 계속적으로 묻게 되고,
오랜 생각 끝에 스스로 내린 결론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 관심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민족을 자녀 삼으시려고 하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선민 삼으신 것입니다. (만민을 위한 선민 선택!)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충분히 깨닫고 이방민족에게 전달해야 하는 이스라엘은 이것을 망각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자신들, 선민에게만 제한시키고 독점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구약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이중언어를 사용하며, 로마 시민권이 있어서 여행에 자유권을 가지고 있던
이방민족에게 하나님을 전하기에 너무나 준비된 바울을 중간 매개자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 즉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바울이 선택받고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에서는 복음에 빚진 자로 표현)
만약 바울이 이것을 거절하고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이방인에 대한 사랑은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선택하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에, 바울은 16절에 표현한 것처럼 부득불, 어쩔 수 없이,당연하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 마태복음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사역에 매진했지만 도리어 버림 받게 될까 두려워 나를 쳐 복종한다는 바울.
마태복음 7장 22절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주의 이름으로 많은 사역들을 행했지만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수있습니다. "사역과 존재는 다르다"는 것!
하나님은 우리가 무슨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보다는 우리의 존재에 더 관심이 많으신 분입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모래위에 지은 집과 반석위에 지은 집을 설명해주셨는데,
모래위에 지은 집이 더 크고 화려해 보일 수 있지만, 고난과 풍랑이 왔을 때 모래위에 지은 집은 금새 무너져 내리고 말지만,
반석위에 지은 집은 그렇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늘 자기 구원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 교회들에는 너무 구원에 대한 확신으로 살아감을 이야기하시며
중요한 것은, 외적으로 행하는 것이 '내'가 아니라, 홀로 있을 때 행하는 것이 진짜 나이고
매순간 나를 쳐서 하나님의 뜻으로 복종하는 것이 중요함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고전10장]
- 10:1-2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 바울은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일을 집단 세례 사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나와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고 가나안으로 나아가는 것, 즉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고 따르게 되는 첫 출발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계속적으로 향向 가나안이 아니라 向 애굽하려고 했고,
초대의 고린도 교회 역시 계속적으로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이 그런 모습들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 10: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 고린도 교회에게 이르는 바울의 가장 중요한 권면입니다. 이 모습이야 말로, 예수를 따르는 제자됨의 핵심이고
바울 자신 역시 이렇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도 자신처럼 살아가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고전11장]
- 11:17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 하나니 이는 저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 요즘 교회에서 "모이기에 힘쓰자"고 많이 하는데, 모이는 것이 날마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모여서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도리어 모이는 것이 해로울 수도 있음을 고린도 교회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18-22절까지를 보면,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이 모여서 한 행동이 나와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한 몸 됨을 경험하는 의미를 지닌 "성찬의식"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서는 부유한 자들이 먼저 모여서 성찬을 하고 가난한 자들을 소외시키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일들을 바울이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가장 연약한 자들을 배려하지 못하고 소외시키는 것은 옳지 않은 행동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 훈련해가는 것이 사랑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전13장]
① 1-3절 : 은사를 은사되게 하는 사랑
② 4-7절 : 사랑의 특징
③ 8-13절 : 사랑에는 유효기간이 없음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사랑은 에로스가 아닌 아가페입니다.
- 아가페 :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하는 사랑 (신 → 사람 // 부모 → 자녀)
끊임없이(끝이 없이) 자신을 내어주고 희생함으로 상대방이 잘 살아가도록 돕는 사랑 (품, 용량이 큰 사랑)
- 에로스 : 아가페와는 반대되는 사랑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하는 사랑, 그래서 반드시 무언가를 추구하고 원하는 사랑 ("-해주세요")
목사님께서 누구나 너무나 잘 하고 싶은 것이 "사랑"이지만, 잘 안 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고린도전서 13장에서는 아가페 사랑을 이야기 하기 때문에 우리와는 상관이 없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 어렵지만 또한 포기할 순 없으니까 도전해봅시다! 라고 권면을..ㅋㅋ
* 바울은 왜 여기서 "사랑"을 이야기 하게 되었을까요?
- 12장에서 이야기하는 은사는 남을 유익하게 하고, 공동체를 풍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은사를 정말 은사 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① 1-3절을 보면 방언과 천사의 말, 예언하는 능력과 믿음, 구제 등의 여러가지 은사가 있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것들이 아무것도 아님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아무리 뛰어난 은사를 지닌 개개인의 교인들이 있다고 하더래도, 교인과 교인을 묶는 끈, 즉 사랑이 얼마나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느냐에 따라 교회의 수준, 질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바울이 생각하기에 고린도 교회에는 아가페(사랑)가 부재하기 때문에 은사가 있어도, 오히려 은사가 분쟁거리와 오해가 되고
있음을 책망하며 13장을 쓰게 된 것입니다.
은사를 은사 되게 하는 참 핵심이 바로 사랑!
② 4-7절에는 사랑의 가장 큰 특징인 오래참음(인내)과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함을 이야기 합니다.
-13: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 사랑의 경계는 "진리 안에서"입니다!
진리와 함께하는 사랑에는 분별력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관계가 단절될 수도 있기 때문에 용기도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분명히 쉽지 않은 것이지만, 목사님의 권면처럼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도전해봐야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고전14장]
고린도전서 14장에서는 방언과 예언에 대한 차이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선 예언과 묵시가 다른 것임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당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평론하는 (분석, 비평) 것이고,
묵시와 가장 다른 점은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했지만, 그에 대한 청중의 반응이 회개하고 돌이키면 심판이 오지 않을 수도 있음,
즉, 청중의 반응에 따라 결과가 바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묵시는 청중의 반응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현재의 한국교회에서는 방언을 너무나 큰 것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14장을 잘 묵상해 볼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14장에서 바울은 방언보다 예언을 더 권면하고 있습니다.
[고전15장]
초대교회의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삶에 있어서 변화를 보여 주었고, 그런 그들의 공통된 주장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오늘의 우리도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명, 증거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 입니다.
우리의 존재의 변화를 통해서 만이 그리스도의 부활이 헛되고 거짓된 것이 아니라 진실된 것임을 전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고린도교회의 교인들 중 일부는, 주님을 믿고 따르는데 왜 자신들의 삶에 여전히 고난이 있는지 그 이유를 궁금해 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위로하는 한편, 예수를 따름의 표징이 바로 고난 받는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의 핵심은 10-13장에서 바울이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는 부분입니다.
[고후1장]
- 1: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된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 위로하시는 하나님
- 1:14 ... 우리 주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것이라
└ 바울은 서로가 서로에게 (서로 때문에) 자랑이 되는 관계가 되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는 함께 구원받는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 1:19 ...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 성경에는 하나님께 대하여 순종과 불순종 딱 두가지만 있는데, 바울이 이해한 예수님은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만 하신 분입니다.
[고후2장]
- 2:15-16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 우리는 모두 자기의 향기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드러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때, 우리를 대하는 세상의 반응은 두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ⅰ) 생명의 길로 나아가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이 향기로 받아들이게 됨
ⅱ) 사망의 길로 나아가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이 감당치 못하여 받아들이지 못함 (배척하게 됨)
이처럼, 우리가 예수를 따르기로 할 때, 즉 의에 바로 서 있을 때 완전히 극적인 두 가지 반응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은 너무나 악으로 물들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진리의 길에 서 있을수록 세상에서는 배척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진리의 공동체가 필요한 것입니다.
* 예수를 온전히 따르기 어려움, 의에 바로 서기 어려움에 대한 위로
- 창세기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 아브라함, 리브가처럼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우는 자들은 자기에게 익숙한 곳들을 떠나서 하나님의 지시하심에 자신을 의탁한
자들입니다. 이런 믿음의 조상들에게도 세상의 반응은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는 데, 축복이나 저주입니다.
여기서, 내가 믿음의 조상들처럼 의의 길, 주님을 따르는 길을 온전히 걸어가지 못하더라도
그 길을 축복하고, 지지하고 격려할 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다고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소그룹 나눔> 오늘 예수의 사람으로 나와 우리에게 필요한 표징은 무엇일까?
- 저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공동체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고, 예수의 사람으로 이 시대의 사람들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여전히 연약하고 어두움이 있지만 그것이 드러남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빛 가운데로 가아가서
진리를 알게 되고 그 진리 가운데 거하게 됨을 기뻐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물론 나의 연약함이 드러나는 것은 너무나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될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쁘고 복된 일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또, 소그룹을 하면서 홀로 있을 때 진짜 나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예수님을 따르기로 하면서 존재의 변화가 일어나는 그것이
예수님의 사람으로서의 표징이 아닐까 하는 의견에도 깊이 공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홀로 있을 때 나의 모습을 생각해보면서
꾸준히 계속 추구하고 걸어가야 하는 길이지만, 혼자가 아니라면, 신실한 공동체와 함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후8,9장]
고린도후서 8,9장에서는 헌금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하나의 분리된 교회가 아니라 초대교회들과 서로 연결된 중 한 교회로 보고
헌금에 대해 '구제를 위한 연보', 즉 평균을 이루기 위한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목사님께서 이 부분에 대해 연결해서 출애굽할 당시의 "만나"에 대해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
-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을 향하는 사람들의 변화해야 하는 가치관 중 한가지가 바로 먹거리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시 가장 먼저 불만을 터트린 부분이기도 한 이 먹거리의 변화는,
가장 실제적이면서도 어려운 변화입니다.
애굽적 지배에서 고기를 먹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젖과 꿀을 먹게 되는 것.
- 또한 "만나"를 먹는다는 것은 탐심을 절제하는 훈련을 받는 과정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양을 가지고 가야 하는 것, 즉 만나는 평균케 하는 매개체입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40년간 이런 훈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가서 또 다른 "애굽"을 다시 만들게 됩니다.
이처럼 존재의 변화라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임을 보여줍니다.
-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발성입니다!
[고후10-12장]
- 11:1 원컨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컨대 나를 용납하라
└ 바울은 자기자랑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이 자기자랑을 하게 된 이유는 이것입니다.
- 10:10 저희 말이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하니
└ 고린도 교회에서 바울을 평가하기를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는 바울이 말을 더듬었다는 의미 보다는
모세처럼 바울 역시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한가지 언어만을 사용하는 사람보다는 말이 유창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증거: 사도행전 14장에서 바울이 말을 많이 한다는 내용 있음)
- 11:19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 바울이 보기에는 거짓 사도들인데, 고린도 교회에서 이런 사람들의 외모적인 것 (육체의 자랑할 것들)에 마음을 빼앗긴 것입니다.
물론, 바울은 이런 모든 것에 빠지는 것이 없었지만 사람들을 시험 들게 할 수 있는 치명적인 병이 있었습니다.
신학자들은 보통 이를 '간질'로 봅니다. (참고- 갈라디아서 4:14 // 고린도후서12:7, 12:20-21)
* 바울이 초대교회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초대교회에 직접 달려가고 싶었지만, 몸의 고난 때문에 글로써 (편지)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간질 때문에 혹시나 복음을 오해하는 사람이 있거나 교인들에게 시험에 들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런 몸의 고난 때문에 바울서신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역설 - 예레미야는 몰락한 제사장 집안의 사람으로, 중심세력으로 부터 쫓겨가게 되었지만 그것 때문에 오히려 역설적으로
더 객관적으로 이스라엘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 고난은 늘 추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역설적으로 우리를 용기 있게 만들기도 합니다!
- 10:7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
└ 자랑하는 자는 주안에서 자랑하라고 했습니다. (주안에서 = 주와 함께)
이것은, 우리가 자랑할 것은 주님의 자기 부인밖에는 없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회가 이런 '외모적인 면'에만 마음을 빼앗겨서 거짓 사도들을 용납하고 있기 때문에
바울이 자기 자랑을 하겠다고 하는 부분입니다.
- 11:14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 바울은 17년동안이나 사도로 진정한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초대교회들 조차도 바울의 회심을 온전히 믿지 못했습니다.
바울이 정말 예수님을 따르게 된 것인지(진정한 회심), 아니면 가장하여 기회를 봐서 모든 교회를 세상권력에 넘겨주려는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초대교회는 바울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믿지 못했고, 이는 바울의 사역에도 어려움이었습니다.
- 11:24-27을 보면 사역의 열매로 육체의 심한 고난을 당했고, 목사님께서는 바울이 고문의 후유증으로 간질(몸의 가시)을 얻게 됐다고
생각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육체의 가시 때문에 바울은 계속적으로 사도권을 의심받게 됩니다.
처음에는 바울의 병에 대해 걱정하던 교인들도 계속 낫지 않음을 보고,
1) 하나님이 바울의 병을 고칠 능력이 없거나
2)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서 병이 고쳐지지 않음으로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 12:7-10을 보면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오해될까 두려워 이것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답을 주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하나님의 답에도 "아멘"하고 받아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기도의 응답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마치 겟세마네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기도와 같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주의 원대로.."
우리에게도 이런 기도 응답의 자세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고후13장]
- 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 목사님께서 이 부분에 대해 우리가 이것을 너무 고민하고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없지만, 1년에 한 번 정도는 금식하며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는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너무 조급한 것도, 그렇다고 너무 나태한 것도 위험한 것이라고 하시며
더디지만, 때에 맞게 신앙의 성장이 있는 것이 좋은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
└ 간혹, 축도에 대해 목사님만 하실 수 있는 것이라서 성도는 입으로도 이야기 하면 안되는 것인지 조심스러워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 축도는 나라를 위해 축복하며 기도하는 것, 부모가 자녀를 위해 축복하며 기도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마지막으로
말씀과 함께 살아가기를, 그래서 우리의 이 땅에서의 삶이 하나님 나라의 그것과 닮아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우리 모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충만하기를 바라며 현장스케치를 마칩니다.
다음시간에도 샬롬으로 만나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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