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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강좌

[현장스케치] "해방후 한국교회사" (2월 9일) 6번째강의 (강신영님 글)


해방 후 한국교회사 특강 6번째 시간 현장스케치를 쓰게 된 22살, 대학생 강신영입니다.^^
글이 늦어져서 죄송한 말씀을 드리며.... 시작합니다!

2월 9일 목요일 해방 후 한국교회사 특강이 6번째 시간을 맞이하여 이제 공부한 날이 남은 날보다 많아졌네요.
강의 초반에는 설렘과 들뜬 마음이 많이 느껴졌다면 지금은 한국 교회가 걸어온 역사 속에 함께 걸으며 더욱 몰입되어가는 듯합니다. 그동안 공간이 비좁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부를 해왔는데 이 날은 강의 공간이 다소 여유로웠습니다. 사람 수는 이전보다 적었으나, 한 사람 한 사람 강의에 집중하는 모습들이 빈 공간을 채워주었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다른 때보다 장로님께서 강의록 밖의 이야기나 개인적인 경험담을 많이 말해주셨습니다. 얘기하시던 중에 오프 더 레코드(off-the-record)를 원하시기도 했습니다. (강의에 못 오신 분들 궁금하시죠?^^) 다양한 이야기와 함께한 흥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이 날은 ‘넓어지는 선교의 지평’이라는 강의 제목으로 1960년대부터 시작된 군사정권과 급속한 산업화 속에서 교회가 진행하였던 ‘노동자와 빈민을 위한 선교’, 그리고 ‘인권 및 민주화 운동’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1. 노동자와 빈민을 위한 선교

박정희 군사정권에 의해 추진된 경제개발사업은 2차 산업의 발달을 이끌었고, 농업에 종사하던 다수의 농민들이 도시로 올라와도시노동자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회변화 속에서 교회는 도시 빈민, 노동자들을 새로운 선교 대상으로 삼고, 전도지를 배부하던 기존의 전도방식에서 벗어나 노동자 교육, 노동조합 조직 지원 등 ‘노동운동’에 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업, 정치권력과 충돌하면서도 교회는 ‘도시산업선교’라는 이름으로 계속해서 산업 노동자, 여성 노동자들을 돌보았습니다.

산업선교와 함께 시작된 또 다른 선교활동은 도시빈민을 대상으로 한 ‘빈민선교’였습니다.

농촌으로부터 도시로 올라온 이주민들이 판자촌으로 대표되는 도시 빈민촌을 형성하며 확산되자 교회는 빈민선교라는 새로운 과제를 안고 이들을 돌보았습니다. 지역사회개발사업을 진행하고 도시문제연구소가 설립되는 등 수도권의 판자촌 지역이나 빈민가에서 도시빈민선교가 이루어 졌습니다.

당시 교회는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한 데나리온의 계약(마 20:13)을 이행하고자, 그리고 ‘고역을 무겁게(출 5:9)'하고 ’그들을 괴롭히고 학대(출 3:9)‘하는 비인간적인 노동 환경을 시정하고자 성경말씀에 근거하여 도시산업선교와 빈민선교를 하였습니다. 이러한 기독교의 선교활동은 1980년대 중반까지 도시의 인권운동을 주도하며 지도자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점차 기독교적 정체성이 희박해지고 영성을 잃어버리면서 일반 노동자의 운동과 기독교의 운동이 다를 바가 없게 되었고, 후에는 일반 노동자에게 운동의 주도권이 넘어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적 사회운동이 나아가야할 바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장로님이 말씀 하셨듯이, 기독교의 사회운동은 기독교적 영성을 끝까지 가지고 가야할 것입니다. 약한 자, 가난한 자를 사랑으로 돌보고, 도움을 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 나라에 동참하도록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 전개되었던 산업선교, 빈민선교는 비록 한계를 가지고 있긴 하나, ‘소외되고 있던 민중의 삶을 외면하지 않고, 가난한 자의 고통에 동참하는 살아있는 기독교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고 장로님은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교회를 향하여 질책도 하십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빈민에 관심이 없고, 자기 배 불리는 데 급급해있다. 배가 너무 불러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힘든 노동에 시달리고, 가난함에 고통 받는 자들이 존재합니다. 육체적인 고통 뿐 아니라 영적으로 결핍되고, 고갈된 수많은 영혼들이 있습니다. 앞만 보고 가기보다는 주변을 둘러보고 이웃을 살피며 그들과 함께 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 인권 및 민주화 운동

일제시대 한국 교회는 일제의 권력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지킨 모습도 있었지만, 부당한 권력과 적절히 타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1960년대부터 등장한 독재 군사정권 앞에서 보였던 교회의 모습도 비슷하게 다가옵니다.

5.16군사 쿠데타, 한일국교 정상화, 삼선개헌 등 계속되는 군사정권의 부당한 권력행사 앞에서 교회는 다시 또 정부 지지 세력과 반대 세력으로 나뉘게 됩니다. 박정희 정권이 일본을 용서하기에는 이른 때에 굴욕적인 내용으로 협정을 맺자 일제시대 신사참배문제로 많은 고통을 겪은 교회는 이에 대해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반대운동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때의 경험은 교회의 비판적 사회참여를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일협정 비준 반대운동 이후 교회의 정부비판은 삼선개헌 때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동시에 보수 교회는 정교분리를 표방하며 정부를 지지하게 되어 교회의 양극화가 시작됩니다. 1972년 유신헌법이 공포되자 대부분의 교회는 적극적 혹은 묵시적으로 이를 지지했습니다. 박정히 정권과 유착하던 교회는 정교분리의 원칙과 로마서 13장을 근거로 세상 권세에 대한 복종을 주장했습니다.

장로님께서는 정교분리를 철저하게 일관성을 가지고 주장했다면 하나의 입장이 될 수 있었겠지만, 당시 보수 교회는 정부를 비판해야 할 때에는 정교분리를 주장하다가, 정부에게 박수치라 할 때는 유착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결국 교회가 때에 따라 이익이 되는 쪽으로 움직인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정부와 유착하던 보수교회 세력은 박정희가 피살되고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이어서 또 정부를 지지합니다. 나라를 위한 조찬기도회를 시행하며 공식적으로 신군부를 축복하였으나 뒤에 회개하지 않았다고 장로님은 질책하십니다.

많은 교회들이 독재정권을 지지했으나, 비판의 목소리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삼선개헌 반대운동이 전개되고 노동자, 빈민선교 세력이 결집하여 비민주적인 정치현실을 비판했습니다. 유신이 공포되자 이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강화되는 정부의 통제 속에서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인권위원회를 창설하는 등 인권운동이 본격화되고 일부 교단과 총회는 잇따라 시국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신군부가 들어선 후에도 교회는 계속해서 사회참여의 진로를 모색했습니다. 현장 중심의 새로운 단체들의 등장은 기독교 사회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며 평화통일운동, 민주시민운동, 교육운동, 학생운동, 청년운동, 농민운동, 여성운동 등 다양한 기독교 사회운동을 주도해 나갔습니다. 기독교의 사회운동이 확장되어가면서 보수 진영의 한국복음주의협의회도 시국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동안 정교분리 원칙과 사회 안정을 위하여 침묵을 지켜왔지만 더 이상의 침묵은 오히려 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히는 선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군사독재정권 앞에서 기독교적 삶의 이념을 ‘활동 현장에 반영, 구현 시키려는’ 노력을 해온 교회의 모습을 보며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어려운 상황 가운데, 많은 기독교인들이 부당한 권력과 손잡을 때에도 끊임없이 하나님 나라 가치를 지켜온 믿음의 선배들이 있기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이라고 장로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늘 하시는 말씀, “역사에 무임승차 하지 말라”, “부끄러운 역사를 남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독재정권과 가까이 하며 어떻게든 살아남아 이익을 보려는 무리도 있었지만, 이 날 강의에서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 믿음의 선배들의 모습이 더욱 마음에 남습니다. 장로님께서 지적하시던 오늘날 젊은이들의 모습, 자기 앞가림하기에 급급하여 무엇이 우선인지를 놓치고 사는 그 무리 속에 제 모습도 있는 것 같아 반성하고, 마음을 다시 잡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보면 현재가 보인다고 하죠. 해방 후 한국교회사를 살펴보며 오늘날 우리의 교회와 나의 모습은 바로 세워져 있는지 계속해서 돌아보게 됩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30년, 40년 뒤에 돌아보았을 때 부끄러운 역사가 되지 않도록 항상 깨어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기억하며 살아야겠습니다.

강의 후 뒤풀이에는 다른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습니다. 이제 몇 번 씩 본 얼굴들이라 익숙해져서 그런지 뒤풀이 분위기가 이전보다 자연스럽고 화기애애했던 것 같습니다. 이 날 강의를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나누고 자신의 고민들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함께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함께 이 길을 걸어가며, 함께 공부하는 동지들이 있다는 것이 참 기쁩니다. 남은 강의에서도 좋은 배움과 좋은 만남이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