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신근범입니다. 벌써 이한열 기념관에 다녀온 지 일주일이 지났네요. 지난 주에 제가 느꼈던 점은 첫째로, 점심 식사가 풍성해서 참 좋았습니다. 둘째로는, 생각했던 것보다 평균 연령이 조금 높아서 당황스러웠지만 모두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참 좋았습니다. 셋째로는, 기념관에서 설명해주셨던 아주머니께서 친근하고 재미있게 이야기해주셔서 참 좋았습니다. 그 외에 들었던 내용과 깨달은 점은, 다니고 있는 교회 청년부 친구들에게 소개하는 글로 써보았습니다. ( 익두스는 청년부 회보 이름입니다. )
이한열 기념관에 다녀와서 하고 싶은 말
“젊음이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나이이다.” 나와 똑같은 나이에 목숨을 잃은 이한열 열사의 일기장에 적혀있던 이 문구가, 나에게는 ‘이한열 기념관’에서 본 어떤 말보다도 인상 깊었다. 그는 자신의 젊음을 다 바쳐가면서까지 무슨 말을 그토록 하고 싶었던 것일까. 기독청년아카데미에서 기획한 역사현장탐방 강좌에 참여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더 이상 하고 싶은 말이 없다는 것, 더 솔직히 말하면 무슨 말이든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연초에 청년들의 통전적 신앙과 자력 신앙을 염원하며 <익두스>가 복간된 이후, 여러 사람들이 여러 책을 읽고 여러 주제들을 고민하며 많은 말들을 부지런히 쏟아내고 있지만, 내 마음 속 한 켠에는 사라지지 않는 답답함이 있었다. 우리들 사는 모습들은 지독히도 그대로인데,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아파하며 기도하자’는 외침의 반복과 변주가 공허하게만 들렸다. 교회에서는 한 공동체지만 세상에서는 각자가 홀로 살아남아야 하는 경쟁 구도 속에 갇혀, 복음적인 대안을 상상할 줄 모른 채 늙어가고 있다는 절망감을 느끼곤 했다.
게으른 일상 속에서 잠만 자고 있던 회의감과 절망감은, 이한열 기념관을 구경하는 내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지금 우리의 삶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라는 고민으로 꿈틀댔다. 한 사람의 죽음이 남아있는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켰다는, 마치 사도행전 같은 이야기를 그 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배은심 여사는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슬픔을 가슴에 묻고, ‘이한열의 어머니’로서 지금까지도 민주화 운동에 힘쓰고 있다. 또한 87년 당시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 학과대표였던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현장에 함께 있었던, 연세대 학생회장과 1학년 학과대표는 각각 정치인과 언론인으로 고인의 뜻을 기리며 살고 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상호’라는 같은 이름을 가졌는데, ‘상호’는 이한열 열사의 아명이었다고 한다.) 그 밖에도 87년 당시에는 이한열 열사와 서로 모르는 사이였던 수많은 동문들의 후원으로 지금의 기념관과 장학회가 유지되고 있다. 마치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새 생명을 얻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처럼,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죽은 이한열의 이름을 살아내고 있었다.
기념관에서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신 아주머니 또한 이한열 열사의 동문들 중 한 명이었다. 그 분은 가정주부로 생활하면서도 시간을 내어 기념관을 지키고 관람객들을 안내하는 일을 하고 계셨다. 이한열 열사나 6월 민주항쟁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굳이 기념관을 방문하지 않더라도 여러 경로를 통해 찾아볼 수 있었겠지만, 그 현장을 생생하게 경험했던 분의 진솔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 참 감사하고 색다른 경험이었다. ‘나이가 들어서라도 가치 있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는 자부심, 전시되어있는 유품과 사진이 지금보다 더 유의미하게 배치되었으면 하는 아쉬움, 사라질 뻔 했던 이한열 열사의 편지를 기증받은 것에 대한 기쁨’ 등 아주머니의 말투와 눈빛에서 여러 감정이 자연스럽게 표출되고 있었다. 단순히 그 아주머니의 감정이 풍부한 것이었을 수도 있지만, 내게는 또 다른 의미의 도전으로 다가왔다. 내 안에 구원에 대한 감사와 기쁨은 메말라버리고, 배운 대로 또 말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죽은 한 사람이 미치는 영향력이 이렇게도 실제적인데, 나는 과연 살아계신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며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주머니께서는 ‘이한열기념사업회’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이야기도 해주셨다. ‘이한열기념사업회’는 회원들의 후원금으로 기념관과 장학회를 운영하고 있는데, 회원들의 후원동기와 정치적 이념이 다양한 모양이었다. 이 사업이 젊은이들에게 옛날이야기 들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보다 적극적인 사회참여로 확장되기를 원하는 회원들이 있는 반면, 단순히 가난한 학생들에 대한 장학금 지원을 바라고 후원하는 회원들도 있다는 것이다. 갈등의 단적인 예로, 회원들에게 보내는 소식지에서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문제를 다룬 일에 대해 열띤 토론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교회 공동체의 고민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재물과 시간을 들여 자신의 삶을 헌신하지만, 교회가 어떤 사역을 중점적으로 감당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교단마다, 교회마다, 개개인마다 그 생각이 다르다.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를 말할 것도 없이, ‘우리 청년부가 올 한해 어떤 모양으로, 무슨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동상이몽을 경험할 때가 많지 않은가.
이한열 기념관을 관람하면서, 막연히 감정으로만 품고 있었던 신앙의 고민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끄집어 낼 수 있었다. 십자가에서 자기 생명을 내어주시고, 지금도 우리와 교제하기를 기다리시며, 온 교회를 하나 되게 하시는 삼위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지금 나와 우리들 삶에서 진정 그러한가 하는 고민이었다. 혹시 공동체에 고민을 나눈다는 핑계로, 또 젊음을 핑계로 단순히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지체들이 속으로만 막연하게 가지고 있는 신앙 고민들을, ‘하고 싶은 말을 하듯이’ 편하게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젊음이라면, <익두스>가 젊음의 연습장으로 건강하게 사용되면 좋겠다. 올바른 고민을 나누고, 그 고민들이 올바른 신앙 고백으로 나아가고, 또 그 고백에 합당한 삶의 자리와 모양들을 공동체가 함께 찾아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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