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도 맑고 푸르렀던 가을하늘 아래,
햇살을 통해 우리에게 “알러뷰”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지를 받으며
고려대학교 418기념관 소강당에서
기독교 세계관 특강 ‘대학생 졸업예비학교’ 첫만남을 가졌습니다.
먼저 출석체크를 하고 기독청년 아카데미 소개가 있었어요.
기독청년 아카데미는 이 시대 청년들이 복음의 능력으로 세속적 가치를 거슬러 대안적 삶을 살아내도록 돕는 기관입니다.
정말 좋은 곳이죠??^^
특히 성경을 새롭고 정직하게 읽는 것을 강조합니다.
강좌를 듣는 동안 함께하는 지체들에게 일어나는 사건에 주목하며 역사하시는 성령님께 민감하게 반응함으로써,
이천년 전 말씀이 현실 가운데 어떠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 몸소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죠.
저는 기독교 세계관 강좌와 만난지 1년 정도 되었는데요,
강의 중에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 기간 동안 저에게도 너무나 크고 놀라운 사건들이 일어났고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평생을 함께 할 동역자도 만나게 되었어요^^
강의를 준비하시는 분들과 수강생 여러분의 말씀과 기도, 소망이 응집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성령의 역사를 많이 체험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졸업 예비학교도 성령께서 하실 일에 대한 기대 가운데
설렘으로 맞이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
다른 기독교세계관 강의가 많지만, 기청아 기독교 세계관만의 특징 몇가지가 있는데요,
먼저 기청아 기독교 세계관은 시대의 우상을 분별하는데 주력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입술로는 하나님 뜻대로 살고 싶다고 고백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자본과 학벌, 부동산, 분단으로 인한 이데올로기에 지배당하고, 그것을 누리면서 살아갑니다.
따라서 나의 영적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회복하기 위해
시대의 우상과 그것의 작동방식을 분별하는게 중요한 것이죠!
여기에 한국 근현대사 공부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역사공부는 세계에 대한 이해이기 때문입니다.
한 개인의 관점이 집단화되면 공동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정책적 맥락이 형성됩니다.
그렇게 형성된 세계와 개인의 세계관이 영향을 주고 받으며 문명이 발전하고, 역사가 흘러가는 것인데요,
하지만 한국은 자유민주주의가 형성되기 전에, 일본의 제국주의, 미국의 개입, 분단을 겪으며
그러한 순환이 어려운 역사적 구조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거의 모든 세월을 정치적인 긴장과 압박 아래에서 보내며,
자신의 입장을 솔직하게 피력하면 죽임을 당하고, 자신과 생각과 일관되게 살아가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아픔의 역사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삶과도 연결이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 내 생각이 변화되었다면, 변화된 생각대로 살아야 되는데,
생각이 바뀌고 신앙이 바뀌었는데 왜 내 삶은 바뀌지 않을까.
한국교회가 항상 안고 있는 질문입니다.
역사는 그 원인을 제국주의과 분단과 군사정권 시대를 거치면서
철저하게 기만적이고 기회주의적이었던 교회에서 찾고 있습니다.
말로는 종교와 권력 분리 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권력에 붙어 기득권을 누리고 권력을 행사했던 교회의 모습들.
그것을 공부하지 않으면 왜 교회의, 그리고 나의 신앙과 삶이 일치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또한 기독교 세계관은 일상 속에서의 성령과 하나님을 중요시합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목숨을 걸고서 지키려고 했던 만민 제사장 원리는
성직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인격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과 교제하고,
성령의 사건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사마리아 여인에게, 소경에게, 38년 된 병자에게, 삭개오 개인에게 인격적으로 다가 가셨습니다.
특별한 조건과 감흥과 조작에 의해, 특정 소수의 목사님들을 통해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의탁하지 않고 바로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영적성장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성령님은 공동체를 통해, 관계 가운데 구체화되어 질 수 있습니다.
일상과 구체적 관계 가운데, 그리스도의 몸된 공동체를 매개로 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삶이 새롭게 되는 역사,
그 가운데 기독교 세계관이 형성되고 세상과 맞붙을 수 있는 대안적인 삶의 양식을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바로 졸업예비학교입니다!!
이 기간 동안 우리가 부딪쳐 살아가야할 세상을 아는 것,
세상의 풍파에 휩쓸리지 않도록 영적 전투를 함께 할 친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과제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세계관을 공부하는 건 지극히 피곤한 일입니다.
우리의 영적 현실이 얼마나 사단의 권세에 찌들어있는지,
추악한 나의 상태를 외면하지 않고 직면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회개의 역사입니다.
나의 살점을 떼어내는 것처럼 아프고 힘든 과정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날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이 있습니다.
지금 현실은 참된 신앙과 순종이 실종된, 기만적 신앙이 만연한 것이 사실입니다.
교회에서는 기도도 길게 하고 성령충만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일상에서는 사단의 권세 앞에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부자청년 역시 기만적 신앙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는 겉으로 봤을 때는 참 거룩해 보입니다. 영생을 얻을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의 정곡을 찌르셨을 때,
그를 지배하고 있는 권세는 재물이라는 것을 직면케 하셨을 때,
그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버리고 내려놓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회피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각자 찔리는 부분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것은 재물일수도 있고, 결혼, 관계, 인정받고 싶은 욕망일 수도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욕망이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욕망인지,
아니면 세상권세가 속이는 욕망인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요?
성령의 능력으로 거듭난 자입니다.
삭개오는 세리 중에서도 ‘짱’이었던 사람으로, 대놓고 세상권세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는 회개와 버림과 내려놓음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부자청년과는 달리, 삭개오는 자신이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고 의지하고 있었던 것을 실제적으로 결단했습니다.
(눅 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신앙은 자아를 비우고 내려놓고 부인하고, 내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욕망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목적이 되고 내가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제가 너무나 사랑하는 말씀인데요,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를 버리신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라도 치를 수 있는지,
정말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는지에 대해 스스로를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경건의 껍데기가 아니라, 나의 안정을 위한 도구로서의 신앙이 아니라,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진정 주님의 도구가 되기로 결단했을 때,
세상에서 겪어야할 불편과 고난과 핍박까지도,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께서 감당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개인적으로, 요즘 유진 피터슨의 <주와 함께 달려가리이다>라는 책을 읽고 있어서 그런지,
강의 중 목사님께서도 잠깐 언급하셨던 예레미야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가 대적에 의해 파괴되고 자기 연민에 빠져,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을 버리고
그저 예루살렘의 일개 시민으로 전락하기 직전까지 침전한 때가 있었습니다.
(렘 12:1) 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
예레미야의 이러한 한탄은, 강의를 준비하시는 분들이나 수강생 여러분,
그리고 저를 비롯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고비마다 하게 되는 한탄인 것 같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이렇게 책망하십니다.
(렘 12:5)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를 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 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하겠느냐
거룩하고 의롭고 탁월한 삶은 분명 불편하고 위험한 고난의 길이란다. 십자가를 지는 삶이야.
보통사람처럼 이 시대가 만든 우상을 섬기며 느긋하게 사는 것이 훨씬 쉬운 삶일 것이다.
더 쉽긴 하지만 더 나은 삶은 아니야. 수많은 사람들이 외식하며 기만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는 순간,
내가 너에게 허락한 은사와 소명대로 사는 것을 포기할 셈이냐?
이렇게 냉담하고 평범한 군중과 경쟁하다 지치면 승부욕이 강한 말들과의 진짜 경주가 시작되면 어찌할 작정이냐?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이냐,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돈을 모으고 소비하며 아등바등 살고 싶은 것이냐,
내가 너에게 계획한 탁월한 모습으로 살고 싶은 것이냐?
군중들과 함께 발을 질질 끌면서 걷고 싶으냐, 아니면 말들과 함께 힘차게 경주하고 싶으냐?
그 선택의 기로에서 “주와 함께 달려가리이다”라는 그의 대답은,
저에게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는 삭개오의 결단처럼 들렸습니다.
예레미야는 그 결단처럼,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주님의 말씀을 담대히 선포하는(렘 1:7)
영적으로 탁월한 삶을 살아냈습니다.
예레미야는 인간적으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히 멘탈이 강인하다거나 뛰어난 지식의 소유자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는 자신이 아직 어려서 말을 잘할 줄 모른다고, 변명하고 회피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신 최상의 삶을 살기 위해 이러한 변명을 하는데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한낱 대학생인걸요, 직장인인걸요,
우리가 이렇게 산다고 해서 세상이 변할까요?
아니오.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히 10:38)고 하셨습니다.
당장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시고 영광의 보좌에 앉으신
믿음의 주 예수님을 바라봄으로써(히 12:2),
오늘도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마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
'학기 강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현장스케치] 9/25 '강아지똥 복음서, 누가복음' 첫번째 강의 (조소명님 글) (0) | 2012.10.04 |
---|---|
[현장스케치] "사회선교학교" - 이한열 기념관 탐방(신근범님 글) (0) | 2012.10.04 |
[현장스케치] 9월 4일 글쓰기 교실 (송미영님 글) (0) | 2012.09.05 |
[대학생 세미나] '청춘의 독서' 이번 주제는 신학입니다. (0) | 2012.08.28 |
[현장스케치] 사회선교학교 <아름다운마을공동체(밥상)> (윤세희님 글) (0) | 2012.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