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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강좌

[현장스케치] 사회선교학교 "홈리스 행동" 탐방 (강선구님 글)

 

 

 

일시 : 2012.7.17(화) / 장소 : 희년함께
/ 참가자: 기청아 사회선교학교 수강생들 / 강의자 : 박사라 활동가님

사회선교학교 네 번째 시간은, 홈리스들의 인권 지킴을 위해 10년을 한결같이 투쟁하고 있는 홈리스 행동에 다녀왔습니다.

일주일 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들을 보니, 사회선교 학교 참가자들이 점점 끈끈한 관계 맺기를 원하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는데요. ^^ 용산경찰서 부근 콩나물 국밥 집에서 맛있는 저녁 밥상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진한 국물을 마시며 한 주간의 일상을 나누고 난 후, 함께 (홈리스 행동 사무실이 공사중인 관계로) ‘희년함께사무실로 강의를 듣기위해 이동했습니다.

비록 우연이기는 했지만, 토지정의 운동을 하는 희년함께터를 방문할 수 있어서 좋았고, 이 곳에서 경제구조로 인해 고통 당하고 있는 홈리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어서 더 뜻 깊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홈리스 행동의 상큼한 젊은 활력소이신 박사라 활동가님께서 저희를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인상적인 강의의 첫 시작은,

예수님도 홈리스이셨습니다.” 라는 스스로 나그네 되셔서 약한자들의 친구가되신 예수님 이야기로부터 출발했습니다.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강사님께서는 저희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홈리스 하면 생각나는 것은?” 그리고 홈리스와 혹시 대화해 본 경험이 있다면 느낌이 어땠는지?”

사실 우리에게 거리에서 노숙하는 노숙인들은, 무기력하고, 나태한, 술에 빠져 자기 삶의 아무런 의지 없이 꼬질꼬질 하게 거리를 전전하며 사는 실패한 인간이라는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우리에게 그들은 철저히 타자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솔직한 고백이었습니다.

하지만, 간사님은 과연 최소한의 생존권을 지킬 수 있는 기반도 없는 그들에게, 사회복귀에 대한 재촉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시며 사회적 편견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켜주셨습니다.

홈리스 행동은 2001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약칭 노실사)’라는 이름으로 출범되었습니다. 금융의 논리로 극대화 되어가는 신자유주의의 부익부 빈익빈에 대한 구조적 비판에 직접적으로 행동하기 위하여 홈리스 행동은 발걸음을 떼었다고 합니다.

초기의 홈리스 행동은 주로 인권영화제 등 거리 노숙인 대상의 여러 문화제를 벌이며, 2002년 월드컵 때 미관을 해친다는 명목으로 홈리스들을 쉼터로 집단수용 했던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서 노숙인 인권 공동 실천단등을 만들어 사각지대로 리치아웃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쪽방촌이나 공동저비용 가구 마련을 위한 주거복지 운동, 명의도용 방지, 노숙인 일자리 삭감 대응, 노숙인 법 제정운동, 긴급복지 지원법 등 다양한 사업들을 통해 홈리스 인권을 지키기 위해 활동해 왔다고 합니다. 또한 홈리스들의 소규모 주말 배움터인 한글 교실을 시작으로 2007년에는 홈리스 야학을 꾸려 아카데미, 컴퓨터, 운동, 노래 등 홈리스들의 자활을 도운 배움 공동체가 홈리스행동의 특화사업으로 이어져오고 있다고 합니다.

▶ 강의를 경청하고 있는 사회선교 참가자들

학계나 정책에서 주로 사용하는 노숙인에 대한 정의는 일정한 주거 없이 거리에서 자는 18세 이상의 사람을 지칭합니다. 서구에서는 집이 없는 모든 사람들을 홈리스라 지칭하며, 영국에서는 생존권의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있는 임신한 여성들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라 활동가님은 노숙인이라는 용어보다는 홈리스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셨는데요,

말씀에 따르면, 그동안 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지칭했던 부랑자’, ‘노숙인에 대한 명칭을 경제적 위기로 인하여 생존권을 박탈당할 수 있는 상태에 처한 대상으로 확장하기 위하여 홈리스Homeless’로 개정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인권을 시혜적 차원이 아닌 보다 권리적 차원에서 보기 위함입니다.

현재 한국에서 거리의 노숙하는 자들의 통계는 작년을 기준으로 2580여명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초생활 수급자까지 모두 포함한한다면 160만명이나 됩니다. 그리고 보다 보편적인 개념으로써의 생존권 불안정에 놓인 사람들인 차상위계층 등까지 모두 포함한다면 100만명이 훌쩍 넘는데요,

보다 보편적 인권보장의 개념으로써 주거가 불안정하고, 일자리가 부족하여 생계를 이어가는 데에 어려움에 놓인 모든 사람들을 홈리스라는 범주로 포함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98년 외환위기 이후 대량 노숙인들이 나온 후 본격적으로 이슈화 되었다고 합니다. 98 이전의 노숙인 정부 대책이 주로 보이지 않게 치우기였다면, 98년 대량 실직사태로 인하여 정부에서는 일자리 정책과 연동한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낙인을 만들어 내었는데 바로, ‘일하지 않는 자는 보장을 받을 수 없다.라는 논리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러한 인식은 아직도 생존권이 권리가 아닌, 시혜적 복지차원에서 노숙인 대책을 논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홈리스의 85%는 노숙상태이지만 일하고 있는 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위험한 편견을 깨는 사실이며, 일자리를 얻는다고 모두가 자활이 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울시에서 시행했던 노숙인 일자리 찾기 프로그램은 노숙인들을 최대한 시설이나 쉼터 혹은 치료자활이나 자활센터를 통해 대책을 마련하고자 했지만, 실제로 현재 한국의 노숙인 관련 시설 여건상 사례관리나 예방적 차원이 아닌 일회적 단순 시설 수용 정도의 차원이기 때문에 진정한 자활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시설 수용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 권리'를 먼저 생각하고,

최소한의 공간마련과 생계수단 지원이 함께 이루어지는 건강한 대안이 필요합니다.

현재 홈리스 인권은 점점 더 사각지대로 들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길거리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명의도용이나 빚보증인으로 내세워 범죄자로 만드는 경우, 혹은 노숙인이라는 이유로 길거리에서 구타하거나 방관하여 죽음으로 내모는 경우 등 노숙상태에서 사망률은 일반인보다 3배나 높다고 합니다.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홈리스에 대한 방관 혹은 철저한 타자화는 결국 모든 인권에 대한 박탈인 것입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노숙인 법에서는 낙인용어 등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할수 있다.”등의 강제조항이 아닌 단순 의무 조항들, 차별에 대한 인권보장이나 권리구제 항목이 없는 것 또한 법개정이 시급한 현실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작년에 벌어졌던 서울역 강제퇴거 사건은, 불특정 다수가 노숙인이 될 수도 있는데 전쟁의 상황으로 몰아넣으려는 가진자들의 횡포임을 보여주었던 사건이었습니다. 정부는 서울역에 거주했던 홈리스들에게 강제퇴거 시에 일자리나 주거지원 중 택일을 하라고 종용했고, 이러한 임시방편적 대책들은 홈리스들을 하나의 인권이 아니라 처리대상으로 바라보는 지에 대해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나는 매일 관 속에 들어가는 것 같아.”

거리에서 노숙하시는 어떤 분은 자신의 조촐한 보금자리인 박스에 들어가며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의 고통을 들으며, 홈리스의 문제가 단순히 나와 거리가 먼 구조의 문제임을 깨닫습니다.

내가 외면하고 싶은 나의 소비생활의 문제, 탐욕의 문제, 그리고 타자로 규정짓는 무관심이 오늘날 홈리스들을 더 괴롭게 만드는 신자유주의 논리의 공범자가 아닌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질의응답을 통해 사라 활동가님께서 홈리스 사역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신학대학원 입학 후, 우연히 영등포에서 홈리스 거리상담을 하며 만난 현장을 통해 예수님이 일하시는 곳이 여기임을 깨닫게 되었고, 그동안의 편견이 무너졌고, 이러한 현장의 깨달음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홈리스 행동에 합류하여 하나님 나라 운동의 끈을 이어오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웃과의 만남을 통해 생동하게 된 하나님 존재 체험은 어쩌면 그 어떤 동기보다도 강력한 동력이 되셨을 것 같습니다.

자신이 만난 대상자의 전 인생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도움이 필요할 때 함께 고민할 수 있고, 연락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자신의 역할에 대한 책임”에 만족한다는 진솔한 고백은

어쩌면 비범한 그 어떤 용기보다도 가장 아름다운 용기로 우리에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현장을 돌아보며, 현장활동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리고 이웃을 마주할수록

""를 깨달아가고 있음이 우리의 고백이었습니다.

비록 저마다 삶의 반경은 다르지만, 사회선교학교를 통해 회를 거듭할수록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기정체성과 아픔을 넘어서서 "함께" 꿈꾸는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며

다음 주 만나게 될 현장으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