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오늘 그리고 예레미야가 살던 당시의 상황에서 탄식해야 하는 것은 부패한 사회가 아니었다.
부패는 이미 진행된, 전제이며, 다만 우리가 탄식해야 하는 것은 부패가 만연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탄식하고, 하나님과 교감하는 참 신앙인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며 교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상은 자신이 그려놓은 하나님 상을 믿으면서,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 상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이를 분별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나의 믿음이 어떤 경로를 통해 왔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이 시대의 정신, 부모의 가치관, 친구, 학교 교육 등..
설교 말씀을 대할 때, 바울이 칭찬했던 베뢰아 사람들과 같은 자세가 필요하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행17:11>
이는 베뢰아 사람들이 바울의 설교를 ‘그런가 보다’ 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정말 그러한가’ 를 따져 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베뢰아 사람들이 바울에게는 돕는 배필(=반대하며 돕는다)이었던 것이다.
예레미야가 사역했던 당시의 배경(BC27~587)
- 절대 강자였던 앗수르가 사라지는 시기(BC609): 바벨론의 공격
-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등극하여 애굽 격파(BC605): 돌아가는 길에 다니엘과 세친구 포로
- 바벨론의 남유다 공격(BC597): 여호야김 사망, 여호야긴도 3개월 만에 포로, 시드기야 왕 등극
- 남유다 멸망(BC586): 예루살렘 성, 성벽 모두 무너짐
[본문 말씀]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렘1:5>
예정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한국 교회의 경우 예정론이 운명론으로 잘못 변질되었다.
갈라디아서 1장 5절과 에베소서 1장 4절에서도 예정에 대한 말씀이 있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갈1:5>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엡1: 4>
예정론은 공로주의 구원관을 배격한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나의 공로)으로 인하여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이신칭의, 즉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의롭다 여김을 받음(우리에게는 전혀 의로운 모습이 없음에도)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전적인 은혜라는 것이다.
또한 예정론은 명제적 사실이 아닌 고백적 언어이다.
이는 사도바울이 자신을 언제부터, 왜 부르셨는지에 대해(=예정의 시기와 목적)에 답하는 과정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메섹 도상에서 처음 만났지만, 자신의 사역이 깊어질수록 예수님을 만난 것은 ‘어머니의 태’(갈1:5)에서 였다고, 아니 ‘창세 전’(엡1:4)이었다고 고백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고백의 언어는 이 세 가지(다메섹, 모태 전, 창세 전) 모두 사실이 된다.
대학교에 막 입학했을 당시 첫 눈에 반한 여학생에게 남학생이 “내가 이 학교에 들어온 것은 너를 만나기 위해서였나 보다.”라고 고백했는데 시간이 흐른 뒤 마음이 더 깊어져 “내가 너를 만나기 위해 태어났나 보다.”라고 고백하는 것과 동일하다.
그러하기에 예정론은 교리적인 진술로는 의미가 없으며, 운명론은 완전히 잘못된 이해이고 경계해야 한다. 한국 그리스도인은 구원받았다는 확신이 너무 강하다. 누가 구원을 받을지는 우리는 알 수 없고 다만 긍휼을 구할 뿐인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 분의 성품 상, 벌 주는 것에 있지 않고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에 있을 것이다. (죄로는 4대를 멸하지만, 상으로는 천대까지 주시는 신명기 말씀)
최근에 신학자들 사이에서 “지옥 잠정설(몰트만, 지옥이 존재하지만 천국같이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엡2:10~11의 ‘땅 아래 있는 자’와 ‘모든’, 벧전3:19~20)
[소그룹 모임-이 시대의 중심 죄악은 무엇인가?]
[부천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계시는 윤선민 자매님과 김장희 형제님의 자기소개 시간]
[후반부 요약]
<렘2:13> 예레미야의 핵심 - 우리의 죄는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생수(바알)을 찾은 것.
하나님만을 믿는 것인지, 하나님도 믿는 것인지를 돌아보아야 함.
<렘7:4, 11> 벧엘(=하나님의 집), 여기 계신 하나님(창28:16), 내가 있는 모든 곳에 계시는 하나님을 성전 건축 이후, 한 공간에 가둠. 공간적 이원론 신앙 등장. 이것을 뒤엎은 예수. (요2:15)
<렘9:24> 아는 것=하나님과의 온전한 합일
<렘12:1> 악인의 승승장구를 부러워하면 안 된다.
<렘13:23> 쉽지 않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악한 습관을 지니고 있는 것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함.
<렘15:1> 중보의 달인이었던 모세와 사무엘의 기도로도 돌이키지 않겠다
<렘17:9> 우리가 싸워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 내 안에 있는 적들과 싸우는 것, 내 안의 MB와 싸워보는 것,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내 친구를 존경하는 것이 어렵다.
<렘20:9> 예언자의 고통, <렘20:10> 하향 평준화 시키려는 습성, <렘20:14>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욥도 같은 말을 함.)
<렘23:5>, <렘22:3>, <렘22:16> 공평과 정의의 시행. 하나님이 우리에게 촉구하는 것
<렘23:15> 모든 문제의 근원이 종교지도자에게 있음.
<렘25:11>VS<렘28:11> 예레미야와 하나냐의 엇갈린 주장
<렘31:31~34> 마음에 기록=의지와 의식 속에서 자율적으로 순종하게 되는 것=초대교회 모습
먼저 구원을 베푸시고(선 은혜), 그 구원을 이루어가는 삶(그 은혜를 다른 누군가에게로 흘러 가게 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렘35:16> 신실함, <렘35:19> 신실함을 높이 평가하는 하나님
이방인, 고아, 과부, 압제 받는 사람들을 그 고통 속에서 건지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합니다.
우리 주위에, 가장 가까운 곳에 압제받고 고통당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은혜의 기쁨을 누리며 '내게 강같은 평화'를 부른다면,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체적인 삶으로 이루어가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정리가 많이 부족하네요. 혹시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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