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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강좌

"새로운 주체생성, 기독운동론" 1강 질의응답

Q) 스스로 복음주의자로서 정체성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복음주의 논쟁을 촉발한 계기는 무엇인가?

그리고 기독교 세계관 논쟁의 결론을 어찌보는가?

복음주의라는 개념을 쓰고 있는 의도적인 의도적인 이유가 있는가?

A) 지금은 회심해서 다시 복음주의자로 자처한다. 이전에 복음주의자가 아니며, 신앙고백까지 버리면서 기독교까지 버려야 하는 것에까지 나아갔다. 그런데 신앙고백을 버릴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너무 힘든 일이 있을 때 기도를 한다거나, 공감하는 사람들이 편하게 다가 온다.

기독교세계관 논쟁에서 방편적으로 기독교세계관을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 입장은 기독교세계관보다는 오히려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면 된다고 본다.

복음주의는 여러 역사적인 흐름 속에 하나로 사용했다. 이런 관점에서 복음주의를 적극적으로 써야할 부분은 써야한다. 저는 한국 사회의 인류학적, 사회학적 관점에서 복음주의를 접근하였다.

 

Q) 복음주의 운동의 미래는 대중 참여적인 풀뿌리 운동의 토대를 만드는 것이 과제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특정 세력의 지원을 많이 받게 되면 운동의 동력이 흔들리는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교회로 돌아와야 한다고 보았는데, 어떠한 대안을 모색중인가?

고통의 현장에 대한 동참과 같은 현장 중심의 운동을 하면 소수운동이 되고 힘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을 것인데,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A) 결국 교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이중전략이 필요하다. 전위운동과 후방대중조직은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운동이 눈치 보지 않으려면 자기토대를 확보해야 한다. 현장의 전위운동의 경우에는 특별히 그러하다. 이것은 소수운동이 될 수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기에 자기토대를 분명히 모색해야한다.

사회선교와 교회갱신 중에서 우선순위를 고르라면 교회갱신을 꼽겠다. 교회갱신을 지향하는 분들이 교회를 향후 20년의 시간동안 형성, 성장해가며 우정의 연대를 이루어야 겠다. 200여명의 교회 200개이면 재정지원의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규모가 된다.

 

Q) 87년 체제의 세대와 생태계의 틀을 잡아 맥락을 짚어주었다. 본인의 위치를 복음주의권의 어느 진영에 속하지 않아서 신랄한 비판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보기에는 복음주의에서 지금껏 통용되어 생산되는 정보와 배경을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것은 스스로 진영에 속하지 않는다면서 주류 지식권력의 한계 속에 있는 것이 아닌가?

A) 그래서 87년형이라고 했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는 스스로 복음주의자라고 말한다. 중요한 문제제기를 했다. 복음주의의 흐름속에 배제된 역사가 있다. 그래서 그런 단위들은 변방 아니면 외부에 있다. 이 지점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배제된 사람들은 87년형 복음주의자라고 볼 수 없다. 87년형 복음주의는 아주 협소한 역사적 조건 속의 산물이다. 87년 복음주의자 3세대는 당시 운동의 흐름의 손, 발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상정하고 있다.

 

Q) 앞선 질문자의 질문에 동의가 된다. 배제된 사람들이 복원을 이야기하며 함께 만나고 행동할 수 있어야하는 데, 그러지 않은 점이 아쉽다.

본인이 이야기한 성찰적 복음주의자로서 교회 공동체를 지금 모색하고 있는지?

새로운 흐름에 대한 언급 속에 다수는 조직으로 언급했는데, 박득훈·방인성은 개인으로 언급했다. 이 분들 또한 개인이 아닌 개혁연대같은 단체로서 주목해야하는 것 아닌가?

뉴스앤조이와 성토모를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덧붙여 광야에서 생명력을 갖고 이어온 단위에 대한 주목을 해야하는 바램이 있다.

A) 뉴스앤조이는 언론사라서 뺐다. 언론사를 운동조직으로 봐야하는 지가 애매해서 그랬다. 성토모는 아예 생각을 못했다.

박득훈·방인성을 쓴 이유는 사회이슈의 현장에서 자주 만났기 때문이고, 좋은 의미에서 복음주의 운동의 어른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거론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그분들이 몸담고 있는 조직을 정확히 잘 모르겠다.

저의 본업은 한국사회를 분석하는 것이다. 비젼도 한국사회의 진보진영의 이론가로서 활동하고 싶다. 제게 있어서 연구공간 수유너머가 일차적인 공동체이다. 그곳에 있을 때, 제일 행복하다. 그래서 이런 조직기반을 가지고 복음주의권에서 이렇게 하자고 깃발을 드는 게 어렵다. 그런 차원에서 복음주의권 안에서 트러블 메이커로서의 역할을 잘 하고 싶다. 이 글이 시끄러웠던 이유는 실명이 거론되어서이지 않을까. 이런 문제제기의 역할을 언론 매체인 복음과상황으로 잡았다. 복음주의 진영에서 운동의 전략가나 문제제기자로서의 역할을 잘하고 싶다.

저의 신앙은 예장 고신의 신앙에서 크게 변한 건 없는 것 같다. 이런 저런 이유로 교회를 여러 곳을 떠돌며 정착하지 못하고, 그렇게 떠도는 친구들끼리 모여서 성경공부를 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단위가 교회와 같이 모여 매주 예배를 드린다.

개인적으로 인생 전반이 기독교를 향해 있지 않은 사람이다. 하나님에 대한 접근은 질적차원으로 함께 한다. 양적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부르심이 다른 것 같다.

 

Q) 지금의 논의가 자료조사나 실제적 인터뷰에 근거하기 보다는 인상에 근거한 작성이었던 것 같다.

진리와 목표자체에 대한 성찰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복음의 의미를 확고히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복음' 자체까지도 돌아보는 성찰성과 상대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할까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이 생긴다.

복음주의권 안에서 에큐메니컬 진영과 많은 교류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교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A) 인상적이라는 것은 맞다. 새로운 흐름에 대해서는 자세히 못 다루겠다. 그래서 다른 분들의 개입과 도움을 더 많이 필요로 하는 상황이다. 외부자라서 편하게 이야기했던 것 같다. 이런 빈 부분들은 내부적 논의를 통해서 해결하면 좋겠다.

김회권 목사가 존스토트 사후에 누구를 봐야하는 가를 물었을 때, 멀리가지 말고 민중신학을 조명할 것을 말했다. 이것은 한국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열심히 해야할 과제이다. 많은 교류 속에서도 어느 정도의 지점에서는 갈라설 부분이 있다고 생각을 한다. 적절한 거리가 서로 공생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