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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강좌

'성찰적 복음주의의 등장을 기대하며'(정정훈) ; 기독운동론 첫 시간 후기 (장철순님 글)

복음주의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한 연원과 흐름을 파악하는 차원에서 87년도를 기점으로 지금의 복음주의 진영이 구축되었음을 당사자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다.

정정훈 복음과상황 편집위원도 이야기했던 말이지만, 87년형 복음주의라는 틀은 당시 생성된 흐름 가운데 지금도 그 자리를 점하고 있는 사람, 조직이 기준이 되어 설명해낼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래서 그것에 포착되지 않는 나머지는 새로운 흐름이라고 통칭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새로운 흐름에 대한 언급을 하며 그 흐름을 주목하게 된다기보다 하나의 특수한 사례로서 한정시키게 된다.

분명 한국 복음주의 흐름에 함께했지만, 92년을 즈음으로 갈라진 단위들은 변방이나 다른 진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후 복음주의 진영의 진행 과정에서 여러 사건들을 통해 성찰과 변화를 이루었던 단위들은 특수한 것으로 치부된다. 그래서 복음주의의 계보를 지속해온 조직과 주체들이 헤게모니는 그대로 잡고 있은 채, 일정주기로 반복하며 진행된 복음주의 논쟁의 재판 격인 생산성 없는 맴돌이에 그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금까지 과정을 분석하는데 있어 진영으로서 복음주의를 방편적으로 사용하는 것에서 나아가 앞으로 창조적인 운동의 흐름이 되기 위해서는 복음주의라는 용어를 대체해야하지 않냐 는 생각이다. 그 이유는 복음주의라는 개념이 담지 못하는 단위와 결이 많고, 지금의 복음주의개념을 사용하면서 헤게모니를 잡는 그룹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정정훈 편집위원은 길고 자세한 87년 복음주의 논쟁의 결론을 성찰적 그리스도인의 교회형성으로 맺는다. 복음주의 운동의 새로운 주체·조직론을 이야기한 것이라 보인다. 그런데, 지금 복음주의 운동이 교회 재정지원을 받아 기독운동을 하는 것에서 나아가 교회자체가 그 가치를 담는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결론은 어찌 보면 새로워 보이지 않는다. 사실 그것은 성경이 줄기차게 이야기해왔던 것이고, 운동론에 있어 조직형성은 기본적인 의제이기 때문이다.

많은 분석과 구체적 언급으로 결론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한 후의 교회의 결론은 진정성으로 이어져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김빠지는 논의가 된다. 먼저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주체들이 그러한 교회를 이루어가는 것에 많은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 지금의 교회는 너무나도 갱신 불가능하다고 보아서 복음주의 운동의 재정지원정도의 기능만 해주길 바라고 있는 것만 같다. 이런 바램으로부터 더 크게 도약해야 하겠다.

이런 교회의 결론이 교단에 속한 제도 교회를 넘어선 기초공동체를 주목하고, 이것을 교회론으로 받아들이는 전향적인 계기가 되면 좋겠다. 또 동시에 하나님나라 공동체, 마을이라는 의제가 조명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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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공부하며, 다음 방향을 잘 모색해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