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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강좌

'성찰적 복음주의의 등장을 기대하며'(정정훈) ; 기독운동론 첫 시간 후기(정인곤님 글)

정정훈 [복음과 상황] 편집위원의 글, '한국복음주의, 혁신없이는 미래는 없다'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 이에 대해 정정훈 편집위원은 자신의 글이 실명 비판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정훈 편집위원의 '87형 복음주의 인맥 지도'는 그 자체로 불온했다. 왜냐하면 ‘순수한 마음으로’ 활동한 사람들의 인간관계를 '정치적'으로 분석했기 때문이다. 이런 분석은 특히 '원로들'을 불편하게 했다.

정정훈 편집위원은 '87년형 복음주의'를 87년 이후 보수적 기독교 진영에서 '사회참여'와 '교회갱신'이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실천을 모색한 사람들이라고 규정한다. 정정훈 편집위원은 세대론적 맥락에서 '87형 복음주의'를 1, 2, 3세대로 구별한다. 이런 분석은 ‘87형 복음주의’의 위기구조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정정훈 편집위원이 보기에 ‘87형 복음주의’는 핵심과제라고 했던 사회 참여와 교회 갱신에 모두 답보상태이며, ‘87형 복음주의’ 1세대 은퇴로 인해 운동의 위기를 맞이했다. 이와 같은 ‘87형 복음주의’의 위기구조는 지나치게 1세대에 의존한 운동이었기 때문이라고 정정훈 편집위원은 분석한다.

성서한국과 기독청년아카데미가 공동기획한 [주체 생성을 위한 기독운동론] 강좌에서 정정훈 편집위원은 ‘성찰적 복음주의의 등장을 기대하며’를 발표했다. 이 글을 통해 범복음주의진영 분석, 새로운 복음주의 운동을 위한 방향 모색을 제시했다.

정정훈 편집위원은 ‘87형 복음주의 인맥지도’에서 ‘범복음주의권 인맥지도’로 확장, 재해석을 시도한다. 2000년대 이후 주목할 만한 새로운 흐름 차원에서 기존 분석(개척자들, 희년함께, 뉴스앤조이, 새벽이슬, 아름다운마을공동체)에 더해 박득훈 목사님과 방인성 목사님을 추가했다. 정정훈 편집위원은 새로운 흐름 속에서 대안적인 운동 모델이 나올 수 있다는 평가와 함께 대중적 운동 기반 구축해야 점과 성찰적 기능을 확보해갈 점 등을 과제로 제시했다.

정정훈 편집위원이 ‘성찰성’을 강조한다. 정정훈 편집위원은 복음주의운동이 교회와 함께 갈 수밖에 없고, 교회의 변화없이 운동이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내부로부터의 변화를 요청하는 맥락에서 ‘성찰성’을 강조한다. 이점은 [복음과 상황] 1월호에 실린 ‘한국 복음주의, 혁신없이는 미래는 없다’에서 언급되지 않은 부분이다.

정정훈 편집위원은 새로운 운동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새로운 운동 패러다임은 운동의 물적 토대를 스스로 구축하는 운동(자생력), 현장에 직접 참여하는 운동(현장성)이다. 여기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운동의 자생력과 현장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정훈 편집위원이 제시하는 방향에는 내적 일관성이 없는 부분이 있다. ‘실험적 시도에 대한 제언’에서 운동기관의 통합을 이야기한다. 정정훈 편집위원은 통합의 필요성을 집중력있는 지원을 위해서, 더 큰 효과를 내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이것은 ‘87형 복음주의’의 위기구조가 1세대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에서 왔다는 분석과 새로운 흐름의 특징이 자생력에 있다는 분석에 충돌한다. 정정훈 편집위원은 지원와 성과에 대한 집착이 ‘87형 복음주의’를 유지시켜왔다는 자신의 분석을 스스로 배반한 것이다. 자생력있는 운동이 지원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은 아니다. 외부 지원은 양가적이다.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치명적일 수도 있다.

정정훈 편집위원은 패러다임 전환을 이야기한다. ‘87형 복음주의 패러다임’의 실효성이 다 했기 때문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정정훈 편집위원의 논리는 ‘87형 복음주의’에 대한 비판 그리고 대안 모색이라는 의도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최소한 ‘87형 복음주의 패러다임’의 존재를 전제한다. 다시 말해 87년 전후 보수적 기독교 내에 형성된 새로운 흐름을 명망가들과 강남형 중대형 교회가 복음주의 운동을 주도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정정훈 편집위원은 패러다임 전환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본인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아닌 기존 패러다임에 머물러있는 셈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볼 때 최소한 ‘87형 복음주의’가 있더라도 그것은 다양한 흐름 중에 하나일 뿐이다. 다시 말해 1987년 전후 시기에 많은 복음주의 흐름이 있었고 지금까지 면면히 흐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87형 복음주의’의 종언을 이야기하려고 한다면 87년 전후 시기부터 면면히 흐르고 있는 자생적이고 현장 중심적인 흐름을 동시에 언급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소위 복음주의 주류에 의해 구성된 배제의 역사를 반복하게 된다.

정정훈 편집위원이 제시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거해 기독운동사를 새롭게 읽어낸다면, 그 역사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 역사는 좌절과 패배의 역사가 아닌 생성과 환희의 역사가 아닐까 짐작한다. [주체 생성을 위한 기독운동론] 강좌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맡겨진 이 공동의 작업을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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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우정의 연대를 통해 생성과 환희의 역사를 써보고 싶습니다.

새로운 기독운동을 함께 만들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