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용과 함께한 각자의 소감을 나누는 모습이에용 :-) 으흐흐흐흐
돌아 오는 목요일엔 무얼 해야할지 아쉬움이 크고 또 너무 큽니다
함께한 재우오라버니 정주언니 명언니 우영이 영준이 주은이 나단이 정한이 (다운이ㅋㅋ) 목사님
정말 좋은 시간이었어요 ^^
용서는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지만,
함께한 8주간의 배움을 통해 앞으로의 삶속에서 좀 더 성숙한 모습의 제가 되길 바라봅니다
하핫 ^^ 이번엔 개인 사진 올라갑니다!!
근데! 우리 후기 모임 한번 안하나용?
명언니 까페 오픈했으면 거기서 모이면 좋을텐데..
후기 모임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댓글 달아주세요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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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입니다. 후기 올립니다.
8주간 즐거운 만남이었습니다.
나름 최고령 수강생(^^)으로 있으면서 얕음이 드러날까 하여 평소보다 침묵 모드를 가졌습니다.
아니, 입이 근질근질하려던 참이면 그때마나 친구들의 생각 나눔과 발표를 통해 해소되는 경험을 쌓으면서
잘 듣는 것으로 충분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히려, 강의 시간에 급급하여 오다보니 충분한 교제를 하지 못해 아쉬움이 있습니다.
마지막 시간, Free Style로 준비하라고 했지만
일천한 상상력으로 무난한(?) 소감문 정리를 하였습니다.
당일, 시간이 부족해서 건너뛴 것도 해서 작성한 원문을 올립니다.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삶 속에서 용서와 포용의 관계를 더 많이 만들어 가는 우리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할 수 없지만, 성부 성자 성령께서 그리 하셨고, 그리 하라 하시므로
우리가 사귐을 갖고 살아가는 공동체 지체들의 힘으로 능히 가능하리라 생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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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기청아 봄학기 타자와 용서 강의 후기
올 봄, 제주 43항쟁에 대하여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
제노사이드(genocide)는, 특정 집단을 절멸시킬 목적으로 그 구성원을 대량 학살하는 행위로, 인종을 나타내는 그리스어 'genos'와 살인을 나타내는 'cide'를 합친 것으로 '집단학살'을 뜻한다.
유럽의 상황에 따라 새롭게 규정된 개념인데, 인종, 민족, 언어, 종교 등의 갈등 국면을 말하고 있다. 동일 민족 안에서 민족, 종교나 정치적 권력 투쟁의 양상과는 무관하게 사상의 차이로 대규모 학살이 자행된 사례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고 하면서 이제 ‘동일 민족 내 신념의 차이’를 추가해야 한다고 했다.
유럽의 사례와 우리 나라의 사례에 대해 모두 백 번 양보해서, 가해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피해자들은 저급한 인종이었거나 사상이 불순한 세력이었다고 인정하자. 그렇다 해도 그것이 대량 학살을 정당화 시켜주는 이유가 될 수 있을까? 그들은 그럴 자격이 있을까? 그런 질문이 남았다.
작년 미국 대선은 미국의 수구적인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에게는 끔찍한 시간이었다. 거대 양당 후보 중 한 명은 동성애를 지지하는 유색 인종이었고, 다른 한 명은 그들이 저주해 마지 않는 소수 이단 종파 출신이었다. 하지만, 대선 후 꽤 시간이 흘렀지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에게 이런 이유(그들이 평소 강고한 신념으로 이야기하던)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안이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면, 무엇이 폭력과 배제를 유발하고 강화시키는가? 왜 이다지도 우리의 가해자들은 반성할 줄 모르고 반복적으로 악을 자행하는가?
성경에 강도 만난 이웃을 따뜻하게 대해주고 치료해주는 사마리아인의 이야기가 있다. 예전에 양재성 목사님(기독교 환경 연대)의 설교가 생각이 났다. 목사님이 어린이들에게 ‘어째서 사마리아인은 그 사람을 극진히 도와주었을까요?’ 라고 질문했을 때 한 아이의 대답이 인상에 남았다고 하셨다. 그 대답은 ‘둘이 친구였거든요’ 였다.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반대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왜 그러지 않았나를 묵상해 보았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리고 주변은 외지고 위험한 곳이었다. 그 곳에는 종종 삶의 터전을 잃은 무리들이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약탈하고 했고, 습격을 받아 버려진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즉, ‘강도 만난 사람’은 ‘비일비재’한 모습이었고, 처음에 한 두번 선행을 베푼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 현실에 포기하거나 냉소적으로 변했다. 어느새 감수성은 무뎌졌다.
우리는 너무 쉽게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예수님은 구조적 모순과 거대악의 실체를 누구보다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불의한 현실을 살아가는 방법은 체제 전복적 투쟁이 아니었다. 묵묵히 다친 사람 한 명을 치료하는 것이었고, 성전세를 내기 위해 물고기를 낚는 것이었다. 혼자 무엇을 한다고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조소를 견디는 사랑의 실천과 평화의 확산이었다. 물론 우리는 예수님이 혼자가 아니었음을 알고 있다. 예수님의 믿는 구석, 제자 공동체가 있었다. (여전히 좌충우돌 실패투성이의 미숙한 인간들의 모임이었을 지라도)
결국 핵심은 관계성이다.
거대 내러티브를 통한 관계 형성을 넘어 생명과 생명이 만나는 경험의 축적이 포용과 평화의 세상을 추동 한다.
4대강 개발, 강정마을 해군기지, 남양유업 등의 갑의 횡포, 무분별한 자연 훼손, 그들이 쉽게 결정하고 밀어붙이는 것은 가서 보고 느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숫자가 아니라 사람으로 만나고 지도가 아니라 발로 디디고 서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 경험과 인상이 결정을 바꿀 만큼 강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들어온 것이 강렬하지 않아서라기 보다는, 자본, 권력 등 강력한 시대의 우상에 사로잡혀 있어서 다른 것을 받을 여지 조차 없기 때문이다)
불편함을 감당해야 한다. 정서의 불편함을 당연하게 여겨야 한다. 최근의 기업과 노동시장은 하청과 하청의 고리로 이루어져있다. 더 이상 외환위기 시절의 금융권, 2008년의 쌍용차 사태 같은 대규모 구조조정은 없다. 원청 업체는 하청 업체의 관리자에게 통보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들은 일자리를 잃고 쫓겨나는 사람들을 마주 대할 일이 없다. 마찬가지로 현대의 전쟁은 돌격 앞으로의 대치와 백병전이 아니라 버튼 하나로 끝나게 된다. 나는 적군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것을 목격하면서 마음 불편해할 필요가 없다. 그저 테이블의 숫자와 지도의 색으로만 확인하면 된다.
포용의 사회적 대순환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은 상호성과 일방성이라는 모순적인 두 속성을 가지고 있다.
용서의 마음과 고백은 많은 경우 들어야 하고 받아야 할 사람들이 말하고 주고 만다. ‘벌레 이야기’의 김집사의 위로와 권면의 말은 그 자체로는 틀린 말이 아니다. 다만, 그것은 알암이 엄마의 자기 고백으로 나왔을 때라야 의미가 있다. 즉,
피해자는 ‘아무 문제 되지 않으니까 괜찮다’는 용서와 포용의 마음을,
가해자는 ‘아무리 그래도 용서 받을 자격이 없다’는 애통과 섬김의 마음을 함께 갖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알 것이다. 주인에게 빚을 탕감 받는 은혜를 얻고 나와서 한 첫 번째 행동은 자기에게 빚진 자들에게 관용을 행하지 않은 것이다.
반대로 적용하여 피해자는 가해자의 마음을 헤아려 누군가에게 내가 상처준 것이 있는지를 끝없이 확인하는 것이고 가해자는 피해자의 성숙함을 본받아 내가 상처받을 일이 생겼을 때 의연하게 대하는 것이다. 이것이 반복되고 확산된다면 ‘가난한 마음’의 하향 일방성을 가지는 사회적 대순환이 일어날 것이다.
나의 용서와 포용은 일대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전 사회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아니 일대일의 관계만으로 풀 수 있는 갈등 상황은 오히려 많지 않다. 나는 누군가의 요나이자 누군가의 니느웨일 수 있다는 발제문의 표현을 기억하라.
물론, 중간의 배신자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바로 이러한 연결 고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치와 시민의 역할인 것이다. 더욱 공의로운 사회가 되도록.
마지막으로, 선한 사마리아인 법을 인용하면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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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마리아인 법(Good Samaritan Law)
1997년 전 세계의 이목을 한몸에 받던 영국의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사고 당시 황태자비는 연인이 몰던 승용차에 타고 있었는데, 맞은 편에서 오던 다른 차량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다. 사고가 발생하기 전부터 황태자비와 연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파파라치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승용차 뒤를 쫓고 있었는데, 이들은 사고 차량에서 이들을 구출하기보다는 사진 찍기에만 몰두했다고 전해진다. 파파라치들은 부상자들을 구해내지 않은 이유로 경찰 조사를 받았는데, 이들에게 적용된 법이 ‘착한 사마리아인 법(Good Samaritan Law)’이다.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곤경에 처한 사람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도덕적 • 윤리적인 의무를 부여한 법이다. 예를 들어, 추운 겨울날 집 대문 앞에서 술에 취해 잠이 든 사람을 발견하고도 이를 내버려둬 동사한다면, 집주인은 착한 사마리아인 법에 따라 처벌받게 된다. 미국의 인기 시트콤인 ‘사인펠트(Seinfeld)’에서도, 4명의 주인공이 권총 강도를 당하고 있는 뚱뚱한 남자를 구출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조롱만 하다가 모두 1년 징역형을 선고받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이들에게 적용된 법 역시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다. 현재 이 법을 적용하는 나라는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 벨기에, 스페인, 미국 등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자신이나 타인에게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에서 곤경에 처한 다른 사람을 고의적으로 방관할 경우, 5년 이하의 구금 및 50만 프랑의 벌금형에 처한다.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신약성서> 누가복음 편에 나오는 이야기를 근거로 만들어지고 그 이름이 붙여졌다. 내용에 따르면, 강도를 당해 길에 쓰러진 한 유대인이 있었는데 사회의 최상류층인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를 구하지 않고 그냥 지나쳤지만, 유대인과 적대 관계에 있던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를 구해 주었다고 한다.
이기적인 사회를 질타하는 이 법에 대해 반론도 많다. 도덕과 윤리성은 개인의 의지이며 법과는 별개라는 측면에서 보면, 법이 개인의 도덕성 영역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도 아직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적용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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