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맘몬'이라고 불리우는 재물의 우상을 '하나님'과 병치관계에 놓으면서까지 주의를 주셨다.
제물과 하나님의 대립구조를 스스로 만드신 것이다.
주님은 자본이 교묘하게 신도들의 마음을 잠식할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일까?
취직을 하고 본격적인 소비생활을 하면서, 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주제가 바로 이것이다.
'맘몬' 섬긴다는 것을 어느정도를 말하는 것인가?
나는 '맘몬'이 아닌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가?
돈을 '섬긴다'라는 표현을 쓰면 나완 전혀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믿는다'라는 표현으로 바꾸어 보자. (believe의 개념이 아닌 trust, 신뢰의 개념에서의 믿음)
나는 하나님을 '믿는가' 돈을 '믿는가'
좀 애매해진다.
사실, 말과 이념적으로는 우리는 하나님을 굳게 믿고 있지만, 일상에서는 '하나님'보다 '돈'에 의해 많은 것들이 결정된다. 직장, 배우자, 의, 식, 주에 관한 것등 거의 모든 선택사항에서 '자본'은 우리의 선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혹시 이런 것이 예수님이 말씀한 돈을 섬긴다는 수준이 아닐까?
그러면 나는 부르주아라는 세속적 존재양식에 계속 메어 달려 이전의 삶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게다가 하나님의은혜가 나를 덮어 주리라는 확신까지 덤으로 갖게 된다. 바로 이런 종류의 '은혜'가 미치는 영향력으로 말미암아 세상은 기독교적이 되었다. 하지만 그로 말미암아 기독교가 세속화되는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세속화의 정도는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대단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과, 부러움을 살만한 부르주아 신분의 삶 사이에 존재하는 대립관계는 끝나고 만 것이다. -디트리히 본회퍼-
본회퍼는 부르주아라는 세속적 존재양식과 그리스도인의 삶은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정상적인 부르주아로 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과 본회퍼가 지적한 그 대립지점을 교묘하게 지워버렸다.
박득훈 목사님은 이를 '안톤의 실명 증세'에 빠진 현대의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다.
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보고 있다고 확신하는 증세라는 것이다.
처음에 교회는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중심에 둔 사람들의 교제모임이었다. 그러나 그 후 교회는 그리스로 이동하여 철학이 되고, 로마로 옮겨가서는 제도가 되었다. 그 다음에 유럽으로 넘어가서 문화가 되었다. 마침내 미국으로 왔을 때, 교회는 기업이 되었다. (한국와선 대기업이 된다)
하나님을 팝니다 -제서니-
자본은 교회를 기업으로 만들고, 목사를 경영자로 만들었다.
그 교회기업은 안톤의 실명증세를 가진 수많은 신도를 양성했다.
지금 예수님이 교회에 오신다면, 2000년전 그러셨던 것처럼 동일하게 교회에서 왠 장사짓을 하냐고 교회 강대상을 다 엎어버리진 않으실까?
한번 숙고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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