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만입니다. 2009년 뭐든 같이 하던 친구들과 제주평화기행에 다녀오고, 2017년 다시 ‘제주 평화와 화해의 순례’길에 오르기까지요.
2009년, 그 즈음은 세상이 알려준 제국과 자본의 논리가 옳지 않을 수 있다는 의심이 들 때입니다. 배우고 믿어온 것을 지키기 위해 고집 부리다가도 같은 해 1월 용산참사를 포함해 생명이 밟히는 무수한 사건 보며 참된 생명의 가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일 머릿속은 엎치락뒤치락 난리통이었지요. 그러던 중 친구들과 선배들이 제주평화기행을 제안해주어 4·3이니, 해군기지니 잘 모르면서 함께 했습니다. 부모님이 출발 며칠 전에 일정표를 보시고 가지 말라고 하셔서 오히려 꼭 다녀오겠단 오기가 생겨 길을 나섰던 기억이 납니다.
8년 전 제주평화기행은 4·3유적지와 강정마을 방문이 주요한 일정으로 짜여있었어요. 제주의 아픔이 하루이틀 일이 아니라 아주 곪디 곪은 상처임을 이때 처음 알게 되었어요. 정부와 맞서 싸우는 사람들은 무조건 이상하고 멀리 해야 한다고 여겨왔는데, 만나본 분들은 그저 평범하게 감귤농사 짓고 물질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삼촌들이었어요. 삼촌들은 강정은 제주에서 가장 맑은 물이 흘러 일강정이라고 불린다며 강정천에서 1급수에서만 산다는 은어를 잡아 회도 떠주셨어요. 그냥 평범하게 살아온 터전을 온몸으로 지키려는 분들이셨지요.
제주평화기행 이후, 함께한 친구들도 많이 변했어요. 한 명은 자기가 목격한 국가폭력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고백과 함께 제주로 이주해 강정지킴이 활동가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친구는 자기자리에 충실하면서 필요할 때 자기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다.
8년이 흘렸습니다. 이변 없이 해군기지가 지어졌고, 관사 축구장에서 해군들이 신나게 축구를 합니다. 미국 함정 이지스함이 들어왔고, 한없이 넓고 단단했던 구럼비 바위는 바스러졌습니다. 아름다운 산호초도 시멘트 물에 생기를 잃고 말았지요.
우린 평화롭게 보이는 강정 앞바다를 아픈 마음으로 바라보며 기도하며 걸었고, 여전히 춥고 먹먹한 큰넓궤(4·3 당시 주민들이 두 달 간 숨어 지낸 동굴) 안에서 떼제 찬양을 부르며 넋을 위로했습니다. 일제강점기, 4·3사건, 그리고 해군기지로 이어지는 역사는 우리가 우리 운명을 결정하는 주체로 살아내지 못했음을 반증합니다. 지금도 관광자본을 쫓아 제주의 많은 영토가 외국인들에게 팔려나가고 있습니다. 외롭고 약한 땅 제주가 더 많이 아파왔습니다.
그래도 여러 역사적 사건 마주하며 이 땅 곳곳에 여전히 크고 작은 생명의 기운이 솟아나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지난 겨울 우린 촛불로 어둠을 끝없이 밝혔고, 앉지 말아야 할 자리에 앉은 사람이 끌어내려진 날 세월호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기적도 함께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제국과 자본의 논리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더 옳다고 믿던 제가 마을에 와서 살고, 깨어있는 시민의 힘 따위 믿지 않던 철부지가 공동체방 식구들과 함께 한 공부로 눈시울을 붉히는 이 변화야말로 이 땅엔 소망이 있고 새로운 세상이 가능함을 고백하게 합니다.
제주는 제2공항이란 또 새로운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육·해·공군은 가까이 같이 있어야 한다는 것, 제2공항은 사실 공군기지이고 그 다음은 육군기지도 들어올 예정이란 사실, 알 만한 사람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제주의 비극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이 싸움은 건설부지 사람들이나 평화활동가들만이 아니라 우리 같은 사람들 몫이 아닐지, 화해와 평화를 꿈꾸며 다녀간 사람들이 잘 기억하고 알릴 책임이 있다고 마음에 새기게 됩니다. 보고 들은 만큼 책임 다해 살아야겠습니다. 분명 모든 게 회복될 날이 오리라 믿으면서요.
안나현 | 서울숲 가까운 회사와 삼각산 자락에 앉은 생활공동체방에서 좋은 사람들과 재미난 하루하루 보내고 있습니다.
출처: http://admaeul.tistory.com/541 [밝은누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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